교복에서 피어나는 미래의 희망  3월이 되면서 단아한 교복의 학생들 어깨 너머 생기발랄한 웃음소리 왁자한 등굣길이 보기에도 흐뭇하고 흐뭇하다. 학교마다 신입생이라는 새 식구가 있어 행사도 다채롭고 순조롭게 적응하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다.  갓 입학한 신입생의 접어 올린 소매가 어서 펴지기를 바래보면서 저 아이들 모두가 누구네의 귀한 아들이고 딸이며 효자 효녀요. 장래 의사요 변호사요 공무원이며 선생님이고 모두 이 사회에서 떡하니 한자리 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2~30년전 신문이며 잡지를 뒤져 보면 도덕불감증과 사회붕괴위험론. 학교는 현대판 후레자식 양성소 등등의 격한 단어로 청소년 문제와 학교교육의 위험을 경고하는 기사가 넘쳐 났다. 그 당시 그렇게 부뚜막 아이 취급받던 학생들이 지금의 4~50대로 이 시대의 주류를 이루는 계층이 되어 있다.   지금 어른들 역시 자라나는 세대들을 향해 그 같은 걱정을 달고 산다. 그들의 언어와 소통방법. 그들이 추구하는 문화적 가치. 그들의 지향하는 목표의식 등 모두가 문제투성이 이고. 어른들의 생각과 너무나 다르다 보니 걱정이 산 너머 산이고 강 건너 강이다. 또 학부모들의 입장에서 보면 더 치열해진 입시경쟁과 높기만 한 사회진입 장벽을 저네들이 잘 넘어가 줄지 정말 걱정이 태산이다. 학교 선생님의 입장은 어떤가? 인사예절도 말투도 모두가 예전 아이들 같지 않고. 뒤만 보면 누가 어른인지 모를 만큼 덩치 큰 아이들이 툭 하면 인터넷에 올리겠다느니 선생임이나 잘 하세요라고 대드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 가야할지 걱정이 태산일 게다.   그러나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 그렇게 그렇게 자라고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의 교복에서 부모들의 희망이. 이 사회의 희망이. 선생님들의 희망이 정말 꽃처럼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사회. 어떤 교육제도 아래서도 학생들의 탈선과 문제 학생은 있었다. 시골 아이들에겐 참으로 높은 벽이었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용하게도 뚫어내고. 이 사회의 중심에 서서 함양을 빛내고. 모교의 이름을 빛내고. 부모와 선생님을 빛내고 있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가정교육이다. 가정교육과 가정환경에 문제가 없는 문제아는 정말 극소수라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사랑과 관심이 가정교육의 처음과 끝이다. 명심보감을 달달 외게 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컴퓨터로부터 이이들을 격리시킨다고 가정교육이 되는 일도 아니다. 그저 지속적으로 보듬고 사랑하는 생활과 부모들의 모범적 가르침 속에서 가정교육의 결과가 나타날 뿐이다.   내 아이를 사랑함에 있어 꼭 필요한 것이 사랑의 매다. 실수하고 잘 못한 아이를 두들겨 패면서 꾸짖고 가르치는 게 사랑의 매가 아니다. 부모 손에 들린 사랑의 매는 부모의 눈물이 담긴 매여야만 하는 것이다. 마음 속 깊은 눈물로 우러나는 사랑의 매가 아니라면 부모에 의해 행해지는 폭력일 뿐이다. 그런 사랑의 매는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 없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 없는 부모의 매를 우선 자식들이 사랑의 매로 받아 들여 주지 않고 반항부터 하게 된다. 사랑의 매를 들 수 있는 부모가 되기 쉽지 않다는 점을 말해 두고 싶다. 사랑의 매를 들 자격이 없는 부모들은 자식들이 효자. 효녀가 되고 사회의 훌륭한 일원이 되기를 애초 기대해서는 안 된다. 부모의 사랑만이 자식을 짐승이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자식을 둔 부모들은 자식 앞에서 부모의 도리와 부모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도록 조심하고 조심해야 한다.   중학교에 입학하여 교복이 좋아서 자는 시간 빼고 교복을 벗지 않았던 시절이 떠오른다. 교복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의미 있는 제복의 하나다. 교복 입는 시간을 내내 잘못 써 버리면 인생 역시 종 쳐버릴 확률이 매우 높다. 어른들이여! 교복 입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정말 사랑스러운 눈길을 보내 주시라. 걸음걸이가 좀 촐랑댄다고. 친구 좋아 좀 몰려다닌다고. 컴퓨터 게임에 빠져 공부하는 시간이 좀 적다고. 어린 마음에 담배 몇 대 피워 문다고. 또 사춘기에 멋을 좀 부린다고. 용돈타령에 거짓말을 좀 한다고.... 어디 그런 걸 후레자식으로 취급할 일인가? 우리도 다 그렇게 그렇게 어른이 되어 왔지 않는가!   아이들의 교복이 갖는 상징성을 염두에 두고 제복 입은 그들에게 합당한 예우를 함이 옳다. 교복 입은 세대가 미래의 세대다. 그들이 실수와 실패를 딛고 저 마다의 꿈과 목표를 향해 날아오르는 그 날 새로운 희망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그들에게 합당한 예우는 바로 내 자식 같은 마음으로 바라 봐 주는 사랑과 관심이다.  훌륭한 부모. 훌륭한 사회의 그늘에서 훌륭한 인물이 나는 것이다. 서울대에 들어가고 전액 장학금을 주고. 박사가 되고. 장군이 되고. 프래카드가 나붙고.... 참 보기 좋은 일들이다. 그러나 그건 일부일 뿐이다. 우리 아이들 모두가 부모와 사회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작지만 소중한 꿈을 잃지 않고 배움의 시기를 완주하여 저 마다 새로운 희망의 문을 열어 젖혀야 한다.  3월이 되어 새싹 같은 교복을 차려 입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면서. 그들의 입에서 힘차게 뿜어 나오는 새하얀 입김이 보면 볼수록 예쁘고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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