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의 딸로 살면서가난한 군인의 딸로 태어나 늘 주린 배를 안고 살던 꼬맹이 하나 있었다. 군인의 아내는 남편이 받아다 주는 월급으로 딸아이에게 입힐 예쁜 무명 원피스 한 벌 사고 쌀 한 말 사면 남는 돈이 없는 시대였다고 기억한다. 자기 아빠가 한 달 동안 힘들여 일하고 받은 월급으로 입혀진 원피스라는 걸 모르던 그 꼬맹이는 감꽃에 얽힌 아픈 추억 하나 가슴에 묻고 어른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참 배고프던 시절이었다. 희디 흰 감꽃이 벼락부자네 마당으로 한 가득 피기 시작할 무렵은 이미 길어질 대로 길어진 낮 시간이 가난한 사람들을 더 주리게 하는 '보릿고개'로 치닫는 때였다. 몸집 작은 꼬맹이라고 허기를 모를 리 없었고 멀건 나물죽 한 그릇으로 아침을 때운 배는 해가 머리 위를 지나기 전부터 이미 먹을 것 생각말고는 다른 무엇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군인의 아내는 돈 벌러 나가고 점심밥도 없고 점심을 챙겨줄 사람도 없는 꼬맹이는 마음만 바빠져 앞뒤좌우 돌아보지 않고 열려진 벼락부자네 대문을 지나 감나무 아래로 달려간다. 꼬맹이는 마당 가득 떨어진 감꽃을 아빠의 한 달 월급과 바꾼 그 원피스에 허겁지겁 주워 담는다. 혹여 꽃잎 하나라도 떨어질까 오로지 그것만 걱정되는 그 꼬마는 속옷이 보이는 것 따윈 아랑곳 않고 치마 앞섶을 말아 올린 채 이번에는 집으로 달린다. 들척지근한 감꽃을 입으로 가져가며 먹고 남은 것은 무명실 길게 끊어 한 잎 한 잎 정성들여 꿰면서 혼자 흐뭇해 웃음을 흘리던 꼬맹이. 그 꼬맹이는 감꽃 때문에 검붉게 물들어 보기 흉해진 원피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저녁이 되고. 공사장에서 자갈 나르다 지친 몸을 이끌고 군인의 아내는 얼룩진 딸애의 원피스를 보고는 화가 치밀어 매를 든다. 아이는 울다가 지쳐 먹고 돌아서면 금방 꺼져 버리는 꽁보리밥 저녁도 거른 채 잠들고. 군인의 아내도 그 옆에서 같이 울다가 잠들고 시꺼멓게 변한 보리밥 한 덩이만 혼자 남아 봄밤을 새웠었다. 밥먹듯 끼니를 거르고 살던 그 무렵 허기를 잊게 하던 감꽃마저 편히 먹지 못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꼬맹이는 다 자라 어른이 된 지금도 감꽃만 보면 눈앞이 부옇게 흐려지는 걸 느낀다. 감잎. 감꽃. 감에 많은 탄닌 성분의 강한 수렴작용으로 인해 많이 먹으면 변비가 되어 고생을 하지만. 그래서 매염제 없이도 염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몰라 경험했던 어린 시절의 잊지 못할 에피소드 때문이다. 어른이 된 꼬맹이는 감물들이기를 무척 좋아한다. 그리고 감잎차 마시기를 좋아하고 감은 물론 곶감 먹기도 좋아한다. 그 꼬맹이가 자란 어른은 잊히지 않는 감에 얽힌 추억 때문이겠지만 마당에 감나무도 한 그루 심었다. 요즘 함양의 곳곳에는 보기만 해도 절로 군침이 도는 곶감들이 내걸리고 있다. 집에 식구들 먹을 곶감을 깎아 매달아 두었어도 꼬맹이 어른은 언제든 곶감을 보기만 하면 절로 손이 나가 지갑을 열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낀다. 오늘도 장에 나갔다가 감을 몇 개 사 가지고 왔다. 주말에 김장을 할 때 양념을 버무리면서 감도 넣어 달콤함을 더할 것이다. 김치가 알맞게 익으면 친구들을 불러 따뜻한 밥과 함께 나누며 그 시절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 녹색대학 생명살림학과 고은정 ggum2345@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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