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갑의 지리산 여행기 62편마천 음정마을 허름한 산 속 갤러리“이런 엄청난 이색그림이 있더라!”  경인년 한해가 다 저물어 가는 늦가을 어느 날 깊은 산 속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모작당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토막을 지어서라도 저 양반의 그림 전시장을 만드세요. 만일 그런 공간이 마련된다면 바로 이곳이 서울 간송미술관이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될 것입니다. 인석 갤러리가 세워지면 음정마을은 전국적 화제를 모을 겁니다!" # 대설주의보가 내린 날 아침 지리산 외딴집 할머니네 창을 톡톡 두드리는 손이 있었습니다. 창을 열고 내다보니 덫에 치인 고라니 한 마리를 다른 한 마리가 데리고 와 깊고 고요한 눈길로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시영 시 <톡톡탁탁>.  인터넷 주소창에 <지리산 첫눈>을 쳐보았더니 2009년 11월3일 지리산에 첫눈이 내렸더군요. 올해 첫눈이 내리면 저는 이시영 시인의 시속에 등장하는 지리산 외딴집 할머니네에서 하룻밤 묵고 싶습니다. 이제 내 마음 속 소년시대는 사라지고…감정이 메마른 나이. 지리산에 첫 눈이 내린다 해서 무슨 감흥이 있겠습니까? 라고 투덜대시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함양읍내나 서울 종로바닥에 내리는 눈이 가수 태진아 급이라면 심산유곡 지리산 속에 내리는 눈은 베토벤 운명교향곡 급. 지리산 온 하늘을 가득 메우고 무질서하게 내리는 눈은. 눈송이끼리 서로 부딪쳤다가 껴안았다가 하면서 내리는데 문자 그대로 광란 그 자체랍니다. 이 눈발 속에 10분만 서 있어 보세요. 소년소녀 시대가 돌아옵니다.깊은 산 속에 폭설이 내리면…. 산짐승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슬그머니 민가로 내려오는가 봅니다. 언젠가 신대철 시인한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나는 어릴 때 충남 청양군 칠갑산 산 속에서 살았지. 어느 폭설이 내리던 날. 쉬(오줌) 하려고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정지(부엌)로 갔더니. 정지 아궁이 옆에 토끼 3마리가 불을 쬐고 있다가 불청객 나를 빠끔히 쳐다보고 있는기라. 토끼 고놈들 혹시 내가 저긋들한테 해코지나 안할까 슬픈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거라. 나는 그 토끼들에게 연민의 정을 보내며 '아냐 헤치지 않는다. 많이 쬐라' 그런 신호를 보냈지. 나는 이 겨울날 토끼들을 지켜보고 한평생 토끼고기를 먹지 않았다네”  통도사 해인사 백담사 전전하며그림의 진수 터득한 산중도인# 각설하고 지리산에 첫눈이 내리면. 독자 여러분을 위해 꼭 초대하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음정마을 한 3평 남짓 외딴집. 저는 이곳을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산속 갤러리라고 부릅니다. 주인장은 전라도 장성 사람으로써 시라소니 관상을 가져 처음 대하면 좀 살벌해 보입니다. 시라소니가 그렇듯 이 양반 눈은 밝고 형형한 빛이 나지요.어쩌다 이 양반이 함양에 둥지를 틀었는지? 그것에 대해선 나중 상세히 들려드리기로 하고 우선 이 이색갤러리 주변 풍광부터 설명코자 합니다. 음정마을은 여러분들이 잘 아다시피 벽소령 자락에 있는 산촌마을입니다. 위치는 인터넷 음정마을로 들어가면 상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음정마을 초입에 가면 벽소령에 존재하는 각종 희귀조류와 동물들 사진이 부착되어 있는데 대충 열거해보면 사향노루(천연기념물 제216호) 딱새 올빼미 산토끼 까마귀 다람쥐 팔색조 때까치 족제비 직박구리 가히 동물의 천국입니다. 벽소령에 사는 새 가운데에는 울음소리에 따라 이름을 붙인 꿍꿍이 멩멩이 딱까치라는 새가 있는가 하면 씹죽씹죽굴 하고 운다고 하여 씹죽씹죽구르새라고 부르는 새도 있습니다.위에 열거한 동물과 새들은 이른바 음정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입니다.저는 지금 이 수호신의 영접을 받으며 전라도 장성사람이 기거하는 코딱지만한 갤러리 속으로 입장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제 뒤를 따라 들어오십시오.방안에는 여느 시골집하고 하나 다를 바 없이 방 한 켠에 비료 포대와 산약초로 담은 약술병이 놓여 있습니다. 케케묵은 홀아비 이불 냄새도 진동합니다. 그림이라곤 벽에 그냥 대충 그린 달마도에 초등학교 수준의 낙서 비슷한 동양화 몇 점 뿐. 전라도 장성출신 주인장은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로 "긍께 이곳은 그림전시장이 아녀. 그냥 내가 비바람 피해 사는 집일 뿐인디. 괜히 기자양반 뻥(허풍) 쳐. 그렇게 사람들 현혹시키면 못쓴다 이 말이여. 그건 그거고 우찌하야 우리 집을 찾아 왔소이?”  이문영 음정마을 주민 외압 때문에이번 주 지리산 여행기 취재!#필자는 며칠 전 음정 토봉정보화마을 이문영 위원장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우리 마을에 이름 없는 떠돌이 화가가 삽니다. 이 분을 주간 함양 지리산여행기 주인공으로 천거합니더. 이분은 우리 마을 발전을 위해 온몸으로 다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마을 산골이라 논농사는 안되고 그저 토봉꿀 무씨래기 버섯 이런 것을 채취해 먹고 살잖습니까? 호사다마라 토봉꿀 요놈아(이놈) 그 뭐시냐. 낭충봉화부폐병 때문에 개박살이 났고. 토봉꿀을 대체할 어떤 산골상품을 개발해야 우리 음정마을이 먹고사는데. 뭘 생산해 먹고살꼬 고심하고 있는 차에 글쎄 이 떠돌이 화가님께서 우리들에게 이색제안을 하는 겁니다. 뭘 먹고살기는 산세 수려한 음정마을 풍경 있잖아 이걸 확대재생산해서 먹고 살아야제라고 말하는 거예요. 제가 반문했죠. 그렇게 어렵게 이야기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우리보고 우찌 해라는 말인지 쉽게 이야기해보소. 하니까 무신 큰스님 법문하듯이 더 어렵게 이야기를 하는 거라 <내가 그림 조께이 그리는데 음정마을을 멋지게 한번 그려보겠소> 구 선생(필자) 이 양반 말이 말인지 막걸리인지 모르겠네? 아따 그놈의 음정마을 그림 가지고 우찌 묵고 산다는 거요?” ▲ 시라소니 관상의 떠돌이 예술가가 이문영 위원장과 환담하고 있다#이문영 위원장은 이렇게 말은 하지만 속셈은 따로 있었습니다! 산 속 이색화가 취재도 하는 김에 우리 음정마을 PR도 해 보라는 무언의 압력이었습니다. 꿩 먹고 알 먹고가 따로 없습니다. 이에 필자가 농을 했지요. -글쎄. 함양땅에 많은 화가가 존재하는데. 그 분만 클로즈업하면 나중 함양 예술가들한테 꾸중을 들을 수도 있는데? (이문영 위원장이 말을 되받습니다)“글쎄 이 양반은 사연이 많은 화가라니까요. 드라마가 있다 이 말입니다. 17세 때 통도사로 들어가 선공부를 했고 이어 해인사 벽담사 벽송사를 전전하며 사경을 공부했다 안 카요? 오랜 간 절에서 마음공부를 한 터라 산새들과 대화도 나누고요”“이문영 위원장. 방금 뭐라고 했어요. 사경(寫經)?”사경이란 불교 경전(經典)의 내용을 필사(筆寫)하는 걸 말합니다.“사경만 그리는 줄 압니까. 이 떠돌이 화가가 그린 대방광불화엄경 변상도 대단합디다”뭐라고? 변상도(變相圖)라고…?   이런 인연에 의해 필자는 음정마을 떠돌이 화가를 취재하게 됩니다.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음정마을 떠돌이 화가와 그가 운영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갤러리 이모저모를 스케치해 보기로 하죠. 독자 여러분께 소개할 화가 이름은 백승수 호는 인석. 전남 장성군 삼서면 홍경리에서 출생. 나이 16세때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문하로 들어갑니다. 이번 주 지리산 여행기 주인공 화풍과 작가정신을 이해하려면 스승 의재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의재는 전남 진도 남종화의 대가입니다. 1891년 생이며 1977년 2월15일 87세로 사망하였지요. 대표작으로 <계산청하(溪山靑夏)>(1924). <설경(雪景)>(1965). <추경산수(秋景山水)> (1971) 등이 있습니다.의재는 그림보다 화찬(그림 속에 넣는 시나 글)을 더 중요시하여 화찬을 정한 후에야 붓을 들었지요. 의재는 제자 인석 백승수에게 무릇 그림이란 붓의 기술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 속에 뜻이 함축되어 있어야 함으로 가르쳤습니다. 인석은 나이 17세 때 의제 문하를 떠나 깊은 산 명찰(통도사)로 들어가 선 공부를 하는 한편 영성적 울림이 나는 그림을 그리고자 용맹정진합니다. 이후 해인사 백담사 벽송사를 전전하다 몇 해 전 음정마을 우거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인석이 우전 한잔을 방문객에게 전하며 말합니다. “음정마을은 명상하기에 정말 좋은… 명당입니다. 이런 풍수인지라 마을 주변에 상무주암 같은 명상도량이 많은가 봅니다. 소인은 이른 새벽 음정마을 계곡으로 가 집회수의 관상을 합니다. 어떻게 하느냐? 먼저 내 이마 앞쪽으로 눈앞에 여덟 사자가 받치고 있는 높은 보배 자리가 있고 그 보좌 위에는 형형색색의 연화좌와 일월좌가 있는 모습을 마음속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 자리 위에 나에게 큰 은혜를 베푸시는 스승 부처님 모습을 한 본존으로 앉아 계시는 것을 마음 속으로 그려봅니다”명상이 끝나면 오두막집에 들어와 붓을 든다고 합니다. 인석은 슬그머니 일어나 어디론가로 가더니 자신이 그린 그림 몇 점을 가져오더군요.▲대방광불화엄경 변상도(大方廣佛華嚴經變相圖)절로 불심이 이는 대방광불화엄경 변상도(大方廣佛華嚴經變相圖)“이 그림은 대방광불화엄경 변상도(大方廣佛華嚴經變相圖)입니다.변상도란 불교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을 시각적으로 조형화한 그림을 말합니다. 자색 닥지에 그렸습니다”인석이 그린 변상도 정면에는 비로자나불이 사자좌 위에 결과부좌하여 지권인을 짓고 있으며 왼쪽으로 화엄경의 설주인 보현보살이 설법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요. 그림 대부분에 금니를 쓰고 구름 광배 연꽃 보엽 등 일부에 은니를 써서 고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불화를 보노라니 단전 아래가 쿵쿵 뛰는군요.마음도 정결해지고 이거 참 보약 몇 첩 먹은 것보다 낫습니다.(사족= 한국 미술사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 중 하나가 바로 ‘사경변상도’이다. ‘사경’이란 글자 그대로는 경전을 베낀다는 뜻인데. 경전은 필사본이건 판각본이건 대체로 어렵다. 그래서 문자에 밝지 않으면 경전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들기 어려운 단점이 있는데. 그래서 생겨난 것이 ‘변상도’다. ‘변상도’는 경전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해 문자를 모르는 사람도 이해하기 쉽도록 만든 일종의 삽화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경변상도인 대방광불화엄경은 당나라의 승려 실차난타가 번역한 화엄경의 사경변상도로.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사상으로 하는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경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끼친 불교경전이다. 경전을 손으로 베낀다는 것은 그 자체가 신앙행위라고 할 수 있다)  ▲달마도기린은 고대 중국 전설 상상의 영수(靈獸)  # 다음 그림은 기린입니다. 동물원의 기린이 아닙니다. 기린은 고대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영수(靈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騏)는 수컷. 인(麟)은 암컷입니다.중국 고전 <시경(詩經)>과 <춘추(春秋)> <역전(易傳)>에 암컷 인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인’은 몸이 사슴 같고 꼬리는 소와 같으며. 발굽과 갈기는 말과 같으며. 빛깔은 5색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공상적 요소가 한대 이후에는 더욱 추가되었는데. 봉황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출현하면 세상에 성왕(聖王)이 나올 길조라고 여겼습니다. 인은 이마에 뿔이 하나 돋아 있는데. 그 끝에 살이 붙어 있어 다른 짐승을 해치지 않는다 하여 인수(仁獸)라고 하였지요. 백수(百獸)의 영장(靈長)이라는 점에서 걸출한 인물에 비유되고. 뛰어난 젊은이를 ‘기린아(麒麟兒)’라고 합니다인석의 보충설명. “저는 음정마을에 기린이 나타나길 바라며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11월에는 교가수죽(喬柯修竹) 대나무 그림을 보아라  # 중국 상해 미술관 연구원 딩사위안이 쓴 <예술풍수> 82페이지에 아래와 같은 글이 적혀 있습니다. “4월이면 4월. 5월이면 5월 그 달에 맞는 그림을 감상하라”인석 그림방을 찾은 달이 11월이니 11월에는 어떤 그림을 감상해야 하나?당사위안은 말합니다.“11월에는 교가수죽(喬柯修竹=높은 곳에 위치한 나뭇가지와 곧게 자란 대나무) 노안(蘆雁=갈대와 기러기). 한림산수(寒林山水)요 12월에는 천죽납매(天竹臘梅). 송죽. 쌍청(雙淸). 암순곡혜. 목단대석. 제설도(霽雪圖)가 좋다”해서 필자는 인석의 대나무 그림을 바라봅니다. 그림 속에 의재 허백련이 그랬듯 화찬이 있네요. 고간수연(高竿垂緣) 풀이하면 높을 고. 낚시대 간. 드릴 수. 푸를 연입니다. 인석의 대나무 그림을 보면. 가장 먼저 곧게 뻗은 대나무가 산간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는 재운을 부르는 기를 생성하여 보는 이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습니다. 대나무가 있는 산길은 죽림을 가로질러 나오며 그림 속에 흐르는 기의 소통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필자는 인석의 대나무 그림을 감상하며 반야심경의 명구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을 생각했습니다. 고집멸도(苦集滅道)란 불교에서의 4가지 진리인 사체를 말합니다. 고는 생로병사의 괴로움 집은 고의 원인이 되는 번뇌의 모임. 멸은 깨달은 해탈의 경지. 도는 그 해탈의 경계에 도달하는 수행이죠. 어떻게 하면 고집멸도에서 벗어날 수 있나? 옛 선사의 화두에서 그 답을 찾아봅시다.<대나무 숲 우거져도 흐르는 물은 막힘 없고 태산이 높다 해도 흰 구름은 걸림이 없다>  ▲ 음정마을 풍경바로 이 그림이 음정마을 먹여 살린다!  # 다음 그림은 음정마을 풍경화입니다. 깊은 산골 울창한 죽림. 텃밭. 객사. 하늘 구름 등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점진적 대비를 통한 상호부각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화창한 여름 오후 깊은 산골마을 한가로운 일상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네요. 팔자는 음정마을 명예주민임으로 인석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선생은 불심이 가득한 예인 아닙니까. 이 그림 판화로 찍어 음정토봉마을 기획상품 속에 곱게 담아 도시인들에게 선사하면 이것 또한 보시 아닙니까?”인석은 가볍게 웃으며 “뭐 하찮은 그림인데…”이때 곁에 있던 이문영 위원장 필자에게 눈짓을 하며 꼭 일을 성사시켜달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이 순간 필자는 가장 행복해집니다.호랑이 원래 고향은 북두칠성입니다. 호랑이 눈이 매섭군요. 귀가 다부지게 작아 당차 보입니다. 꼬리는 아주 굵고 길어서 천지를 휘두를 듯한 기개다. 검정 갈색 연갈색 섬세한 필획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인석의 그림 호랑이는 여느 작가의 그림과는 다르게 그림 속에 막강한 파워가 흘러 넘칩니다. 속설에 따르면 호랑이는 추성(樞星)에서 온 동물이라고 합니다. 추성은 어디에 있는 별이냐구요?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에 의하면 “28수(宿) 중심을 추(樞)라 한다. 추는 ‘가운데’ 또는 밑동과 지도리라는 뜻이며 북두칠성의 첫 별자리 이름이기도 하다. 북두칠성은 임금의 자리이며 추성은 임금별로 친다. 북두칠성은 자리를 옮기지 않아 고정불변이다. 그리하여 뭇 별이 임금별을 싸고돈다. 이런 상징성을 살려 임금은 북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남쪽에서 바라보는 신하를 마주한다. 경복궁도 임금자리를 북쪽에 배치했다”한편 호랑이는 양의 기운을 가장 많이 가진 동물로 이름 높습니다. 7은 양의 수입니다. 그래서인지 호랑이는 태내에 일곱달 있다가 태어나고 머리에서 꼬리까지 몸길이가 7척이라고 하네요. 호랑이 양기를 이어 받고 태어난 우리 인간의 운명은 어찌한지 이야기해 볼까요.   <만일 그대가 범골이라면? 11에서 12세 신명에 수화살이 비쳤으니 화재수를 조심해야 하고 27세땐 기쁜 문서를 잡아도 경사를 보지 못한 즉 몸에 뜻하지 않은 근심이 따른다. 40세 이후면 갈수록 가경이니 비로소 인생의 맛을 느낄 것이다>육갑경(六甲經)에 나오는 말입니다. 달마가 신발 한 짝 숨겨둔 까닭은?  # 달마(達摩)는 중국 선종의 초조입니다. 그는 인도 남천 축인 사람으로서 양나라 무제 보통 원년에 나뭇잎 하나를 밟고 강을 건너 중국 광주 번우에 왔다가 후일 숭산 소림사에 이르러 면벽좌선한 선승이죠. 최근 필자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를 읽다가 달마와 관련된 이색 에피소드를 발견했습니다. 이윤기는 달마를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달마도라는 그림이 있다. 수염을 기른 험상궂은 스님을 그린 그림. 달마도에 그려진 스님이 바로 달마스님이다. 눈은 유난히 무섭다. 졸음이 오면 눈꺼풀이 내려오는 법인데 이게 귀찮아서 아예 눈꺼풀을 잘라 버려서 그렇다고 한다. 달마는 평생 신발 한쪽을 정수리 위에 올려놓고 천하를 주유했다. 열반한 후 황제가 달마무덤을 팠더니 시신은 흔적도 없고 신발 한 짝만 남아 있었다”이윤기는 신발을 가리켜 천지간을 경계하는 도구라고 풀이하는군요. 이윤기의 글을 떠올리며 인석의 달마도를 감상했지요. 역시나 맨발이었습니다. 우리는 인석의 그림 <달마도> 그중 맨발을 보며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그 해답을 고사를 통해 알아보죠.  <중국 양무제는 현인 달마를 만나고 싶어했다. 달마와 맞닥뜨린 양무제는 매우 당혹스러웠다. 온화한 부처님을 마음속으로 그리던 양무제의 기대는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익히 알려진 달마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울퉁불퉁한 관상에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칠척 장신에다 산적처럼 수염을 기른 괴인. 잡귀가 다 질려서 도망친다는 화상이 아닌가. 양무제는 그 몰골이 어디에서도 대자대비한 부처님과 공감대를 찾지 못했다. 게다가 발에 끼고 있어야 할 신발 한 짝을 정수리 뜨윽 올려놓은 품세란 엽기적이라고 할 밖에. 그러고는 다소 오만한 태도로 궁금한 게 있으면 기탄없이 물어보라는 것이었다.“짐은 온 백성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게 하고. 팔만사천의 절과 탑을 세웠노라. 과연 그 공덕이 얼마나 되겠는가?”양무제는 짐짓 자랑스레 말했다. 천자로서 이만큼 했으면 의당 극락으로 가는 특급열차 표라도 주고. 또 서방정토에도 자신의 궁궐 하나쯤은 부처님이 마련해 놓았으리라고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달마의 대답은 단호하고도 엉뚱했다."무(無)!"세속적인 공덕은 세속에서 인과응보로 끝나는 것일 뿐. 그것으로 인해 부처님 나라에 가게 되거나 부처가 될 수는 없다는 설명이었다. 심기가 뒤틀린 양무제는 달마의 신발을 꼬투리 잡아 빈정거렸다.“그렇다면 부처가 되려면 신발을 머리에 이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달마가 대답했다.“이것은 진리를 똑바로 보라는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마음부터 깨부수어야 합니다. 황제께서는 이런 저를 보고 받아들이실 건지 아니면 내쫓으실 건지. 그것만 결정하시면 됩니다”이에 양무제는 참았던 분통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것으로 음정마을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갤러리 답사는 끝났습니다. 나는 좋은 그림을 구경 시켜준 인석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후 이문영 위원장에게 토막을 지어서라도 저 양반의 그림 전시장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만일 그런 공간이 마련된다면 바로 이곳이 서울 간송미술관이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될 것입니다. 인석 갤러리가 세워지면 음정마을은 전국적 화제를 모을 겁니다.인석은 이 말을 들었는지 먼 산 구름을 바라보며 “우짤 수 없이 내가 이 아름다운 마을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하라는대로 하는 수 밖에!”경인년 한해가 다 저물어 가는 늦가을 어느 날 음정마을 깊은 산 속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모작당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지리산 그 뭐시기냐 이 마을 수호신 씹죽씹죽구르새라고 부르는 새가 씹죽씹죽굴하고 웁니다. 아. 음정마을에 첫눈 언제 내리려나?  구본갑|본지칼럼니스트busam7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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