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해룡 논설위원둘레길 열풍! 가히 마땅한 표현을 찾기 어려울 만큼 지리산 둘레길을 찾는 많은 인파를 보면서 대중매체의 위력과 들불과도 같은 유행의 단면을 실감하게 된다. 남원시의 집계에 따르면 지리산둘레길 남원구간(주천-운봉. 운종-인월. 인월-등구재) 방문객이 2008년도 5만명. 2009년 9만명. 2010.10월현재 35만명이 넘었다고 하니 가히 열풍이 아닐 수가 없다. 이러한 열풍인지 광풍인지 모를 현상 앞에서 전라도 남원에는 저렇게 사람들이 넘쳐 나는데 함양은 뭐하고 있었기에 이 모양이냐는 아쉬움과 시샘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 같다.군에서도 안내센터 설치와 주차대책. 들쑥날쑥한 택시요금의 통일 등 공공시설과 일부 서비스에 국한하여 뒤늦은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산한 모양이다. 꼴뚜기 뛴다고 망둥어 뛰듯한 대책마련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둘레길 탐방의 현주소와 전망부터 제대로 짚은 뒤 진짜 해야 할 일을 찾아서 실속 있게 차근차근 해야 하지 싶다. 제주도에는 섬 일주거리의 절반이 넘는 올레길 18개코스 327km가 개설되어 관광객들에게 개방되고 있다. 올레란 대로와 집을 잇는 골목길과 마을진입로를 합쳐 부르는 제주도 방언인데 올레길은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토착 주민들의 삶을 걸으면서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해 주자는 뜻에서 있던 길을 외지인들에게 개방한 길인 셈이다. 폐쇄에서 개방의 선언이기도 하다. 제주도 촌락의 특성상 남의 집 앞마당이 길이 되는 곳도 있어 초기에 길을 개방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이젠 제주도를 특징하는 큰 관광 상품으로 자리매김 하기에 이르렀다.제주도 올레길이 관심의 대상이 될 즈음에 환경단체인 지리산생명연대의 주도로 ‘숲길’이라는 사단법인이 만들어 졌고. 2007년부터 숲길이 주체가 되어 그 해부터 산림청의 녹색복권기금에서 해마다 10∼20억원씩 지원을 받아 둘레길의 선형을 정하고 이정표 등의 시설을 보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숲길’이 정한 함양 통과구간이 과연 지리산 둘레길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로부터 함양 삼봉산 기슭의 등구재와 창원마을을 지나 금계마을을 잇는 길이 큰 관점에서 보면 지리산 둘레길도 될 수 있겠지만 둘레라는 사전적 개념에서 보면 이는 엄연한 삼봉산 둘레길일 뿐이다. 함양 마천구간의 제대로 된 지리산 둘레길을 말하려면 산내면 실상사에서 약수암을 거쳐 마천면 도마와 외마마을을 지나 매암 실덕 백무동 창암산 추성을 지나 벽송사를 잇는 길이 아닌가 생각된다.이 일대는 예부터 내지리(內智異)라 불리는 곳이고 풍광이나 인문지리적 환경 또한 지리산 둘레길로 더 적합하다고 본다. 사단법인‘숲길’에서도 이 길을 몰랐을 리는 없을 테고 아마도 걸으면서 지리산을 보는 조망이나 접근성에서 더 낫다고 보았거나 인월 구간과의 연결을 위해 짜 맞추다 보니 그리 정해지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군에서는 ‘숲길’과 협의하여 함양구간의 노선부터 재조정할 필요가 있겠고. 함양을 찾는 지리산 둘레길 방문객 수라도 제대로 파악하고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 좀 찾아 봤으면 좋겠다. 또 장기적 관점에서 이 들불과 같은 유행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변할 것인지 냉정한 시각으로 판단하고 전망하여 쫓기듯이 남이 하는 것들 따라하지 말고 대책다운 대책. 앞서 예측하고 대응하는 정책을 세워주기를 기대한다.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지리산 둘레길을 찾는 사람들을 향한 우리 민심을 말해 주는 척도의 하나가 그들을 포괄적으로 부르는 용어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그들을 ‘둘레길 오는 놈들’ ‘서울 놈들’ ‘도시 놈들’ ‘있는 놈들’이라고 흔히 지칭한다. 필자는 마천 창원마을과 금계마을에서 "그 놈들 쓰레기만 버리고. 농작물에 손이나 대지 뭐하나 도움되는 거 있냐면서 길을 막아야 한다"고 말하는 주민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사실 함양에 대단한 인물이 있어 인물을 보러 오겠는가? 훌륭한 건물이 있어 건물을 보러 오겠는가? 함양과 같은 농촌을 찾는 사람들은 시골의 평화로운 풍경을 보고 싶어하고. 고향마을을 대신해 주는 소박하고 도타운 인심에 대한 그리움과 살맛나는 곳에 대한 또 사람냄새 흙냄새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온다. 그리고 그들이 진심으로 감동하는 하는 것은 금강산이나 황산에서 볼 수 있는 빼어난 자연풍광이 아니라 사람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진짜로 보여 주어야 할 것은 꽃길이 아니라 살맛나는 풋풋함이 묻어나는 순후한 인심인 것이다. 아무리 고대광궐 훌륭한 집을 가졌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집은 빈 절간과 다를 바 없듯 사람 사는 곳에 사람이 끌어야 하고. 손님이 떠나고 나면 설거지는 당연히 주인의 몫이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쓰레기가 남고. 풋고추 몇 개가 없어지고. 밤톨 몇 개가 축이 난들 그게 그들을 도둑놈 취급하듯 내몰 이유가 아니지 않는가?우리는 도시의 지하철과 광장에. 고속도로변 광고판 할 것 없이 살기 좋은 함양이니 많이 찾아오시라고. 함양 농산물 좋으니 많이 사시라고 광고하느라 많은 비용을 쓰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기 그지없다. 제 돈 들여 제 발로 오는 사람들 한량없이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어느 누가 이 들을 진정으로 따뜻하고 고맙게 맞이하는가? 공동체적 관점에서 이들을 고마운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친절과 정성으로 대하는 자세와 노력이 필요하다.우리 공동체에 그런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만들어지게 되면 그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것을 덜어주는 시설이 만들어지고 주말에만 운행하는 구간버스도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맞이하기 위한 시설을 늘리는 데는 굉장히 조심하고 유의해야 한다. 화장실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다고 해서 화장실과 같은 시설을 만들면 청결과 편의성을 지속시켜 줄 방안이 충분히 담보되어야 한다. 지리산 둘레길 전부에 500m 간격으로 화장실과 쉼터를 만들 수는 없지 않는가? 인간과 자연이 만나 서로 허용하는 범주에서 해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고 무분별하게 인위적인 시설을 늘이는 것은 자연에 대한 상처가 될 수 있다. 쓰레기만 남길 뿐이라고 하는 주민들의 평가에 대해서는 도시와 농촌이 만나 상생하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 구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민박집을 만들고. 여기저기 농산물 판매 부스를 설치하는 것 등등의 방법으로는 문제 해결의 문턱에도 갈 수 없다. 연예인과 미디어 효과가 사그라지고 나면 정말 걷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지리산과 함양과 함양사람을 생각하며 걷게 될 호젓한 산길이 될 것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당장은 좀 더 지켜 볼 일이다.앞으로 몇십년 지금의 열풍이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반드시 열은 식고. 바람은 자게 된다. 호들갑스럽게 대책 세우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내지리길. 추성마을 주변길. 빨치산 루트 등 정말 인문지리적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는 지리산 둘레길을 조성하고 유행에 들뜬 사람들이 아니라 산이 좋아 산에 가는 사람들에게 함양을 알게 하고. 사람을 알게 하고. 추억을 만들어 가게 하는 일 그 것이 바로 근본대책이고 군과 군민들이 함께 해야 할 일이다.제주도의 올레길은 삼삼오오 한적한 도보 여행객들이 주를 이룬다. 지리산 둘레길도 언젠가 그렇게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제주도 올레길이 폐쇄에서 개방의 선언인 것처럼 우리의 지리산 둘레길은 따로 존재하는 도시와 농촌에서 서로 돕는 하나를 향한 도시와 농촌의 상징적 출발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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