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 여간 제대로 산에 오르지도 못하였다. 내일 아침이면 단풍이 붉게 물든 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을 등산한다는 설렘에 제대로 잠이 들지가 않았다. 또한 체력의 한계로 다른 일행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작년 이맘때 ‘주간함양’에서 주선한 지리산 천왕봉 등정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로 다시 천왕봉을 오르는 것이다.걱정과 두려움 속에서도 우리나라 최고의 명산을 오른다는 기쁨과 즐거움 속에 일찍 눈을 떠 가벼운 준비운동 후 짐을 챙기고 집결장소인 상림공원 주차장으로 향하였다. 벌써 일행 50여명이 먼저 나와 담소하며 산행에 대해 흥분과 즐거움으로 재미있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이번 등정코스는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를 거쳐 천왕봉에 오르고(5.4㎞) 제석봉과 장터목산장을 거쳐 마천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코스(7.5㎞)로 약13㎞이며 총 8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되어 졌다. 우리 일행을 실은 관광버스는 8시경 가을을 잔득 머금은 아름다운 상림공원을 뒤로하고 황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한 누런 한들을 지나 산청의 중산리로 향하고 있었다. 중산리로 향하면서 바라본 시천면은 잘 가꾸어진 마을들이 제법 외국의 모습과도 비슷하였고 계속 이어진 감나무는 황금빛을 머금고 산청곶감의 명성을 노래하는 것 같아 부럽기도 하였다. 드디어 중산리 주차장에 도착 산행의 출발점에 섰다. 우인섭 부사장의 등산시 주의사항을 듣고 나누어준 김밥과 맛있는 과일을 챙겨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며 기다리고 있을 천왕봉으로 힘찬 발걸음을 옮겼다. “출발은 미미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자심감과 “지리산을 찾은 우리들에게 내일을 향한 희망찬 발걸음을 스스로 기원하면서...” 민족의 영산 지리산! 우리의 가슴에 숱한 애환을 간직한 지리산! 해맑음 미소를 머금은 어머니의 품속처럼 포근하고 따뜻하며 아버지의 장엄함으로 우리를 포용하는 지리산! 멀지 않은 곳에 천왕봉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이곳은 시작부터 경사도가 만만하지 않았다. 땀방울을 훔치며 1시간쯤 산행을 하였는데 칼바위라는 바위가 있었다. 아마 예리한 칼 모양을 닮아 지어진 이름 같았다. 주변의 풍광도 제대로 볼 겨를도 없이 헉헉거리며 산을 오른다. 우물이 있고 취사장이 있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로타리대피소’를 지나 ‘법계사’에 도착하였다.법계사! 천왕봉 아래 해발 1.450미터에 위치하며 우리나라 사찰 중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절이다. 신라 진흥왕 5년(서기 544년) 연기조사께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인도에서 모셔와 봉안하면서 창건하였다 한다. 1.500여년 전에 이 높은 곳에 절을 세우다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법계사가 흥하면 일본의 기운이 쇠한다는 전설 때문에 고려 말에 왜적에게 한번 소실이 되었고 그 후 중건되었으나 임진왜란과 6.25전쟁 때 등 세 번이나 불에 타 역사와 세월 속에 모진 풍파를 겪은 애환의 절이다. 그 후 초라한 모습으로 3층 석탑만을 지켜오다가 불자들의 발원으로 다시 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게 되었다 한다. 숨을 헐떡이고 녹초가 되어야 도착 할 수 있는 이곳에 그 오래전 신라시대에 그 누군가는 여기에 도량을 정하고 소망의 탑을 세웠다. 그리고 그 탑 사이로 긴 세월을 넘어 다시 해와 달이 떠오른다. ▲ 천왕봉에서이제는 천왕봉을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한다. 경사도가 더욱 심해졌다. 등산 안내문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여기서부터 천왕봉(2㎞)까지는 급경사로 심장질환 사고 (사망4명)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입니다.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천천히 안전 산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와∼ 정말 겁나네.멀리 또는 가까이 보이는 높은 산 능선과 무리에는 아름다운 단풍이 만개를 하였다. 단풍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내가 단풍인지 단풍이 나인지 구별이 안갈 정도로 오색 영롱한 아름다움이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쥐어짜면 연분홍 물감이 주르륵 흘러내릴 것만 같다. 위대한 자연의 순리 앞에 고개가 숙여지고 초연해지며 초라한 인간의 모습이 부끄러워진다고 하여야 할까. 저기 천왕봉이 앞에 서 있다. 거대한 암괴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봉우리를 오르기 직전 정상아래 큰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샘물하나가 있었다. ‘천왕샘’이었다. 이렇게 높은 지대의 암벽 사이에서 샘물이 솟아나다니 경이로웠다. 이 샘물이 바로 남강의 발원지라는 안내문에 산등선과 아래를 다시 한번 둘러본다. 백두대간의 장엄함이 큰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지리산 천왕봉은 해발 1.915미터로 한라산 다음으로 높다. 마천면 추성리 산1번지 우리군의 땅인 천왕봉이 더욱 자랑스럽다. 바위로 이루어진 정상은 항상 구름에 싸여 있어 “예로부터 3대에 걸쳐 선행을 쌓아야 이곳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말이 전해올 정도로 장엄한 곳이다. 맑고 청명한 가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였다. 눈이 부시였다. 우리 일행을 하늘도 천왕봉도 반겨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일행을 잠시 뒤로하고 지리산 수호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우리 함양군민들께서 풍성한 가을을 맞게 해 주시고 건강과 행복을 지켜 주시며 우리 일행의 안전한 산행 마무리를 도와주시옵소서...”‘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아니 ‘지리산도 식후경이라’ 이제 점심시간이다.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즐거움은 천왕봉 등정만큼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박석규 사장이 힘겹게 짊어지고 온 막걸리는 아직도 얼음이 녹지 않아 서걱서걱 하는 게 일품 중의 일품이었고 뇌계 선생의 “두류산의 노래” 시 암송은 우리 일행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두류산의 노래” 뇌계 유호인 (1445∼1494)  천왕봉 위에 올라 / 신선에게 예를 표하노니번쩍이는 환한 빛 / 안개구름 사이로 솟아 오르네고개 들어 우러러 보면 / 고금의 사물이 눈 아래 있고한 세상 모든 것이 / 부질없이 아득하여라천왕봉이 아니라면 / 우러러 볼 산 어디 있으랴한 밤에 해가 돋는 / 동쪽 바다 부상의 새벽동남으로 수만리 / 멀리 공간을 보니한가닥 푸르른 섬 / 구름바다위로 떠 오르네  천왕봉의 장엄하며 포근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제석봉과 장터목산장을 지나 하동바위쪽으로 하산을 시작하였다. 제석봉 고사목 지대의 풍광은 예나 지금이나 일품 그대로였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주목들은 고지대에서 모진 비바람과 수많은 눈보라 속에서도 꿋꿋하게 그 아름다운 자태를 잃지 않고 등산객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의연하였다.해발 1.653미터에 위치한 장터목산장. 도로가 발달되기 전 함양 마천사람들과 산청 시천면 사람들이 이곳에서 물건을 사고 팔며 장이 섰다는 장터란다. 정말 옛 조상들이 가엽기도 한 생각이 든다. 이 높은 산꼭대기까지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왔다니. 요즈음 누가 돈을 받고도 이곳까지 물건을 옮길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장터목산장은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에게 하루 밤을 쉬어 갈 수 있는 안식처이며 갑작스런 재난 발생시 우리를 보호 해 주는 산 속의 보금자리이다.하산 길에 처음으로 만난 샘물 참샘에서 땀을 닦고 속이 시원하게 물 한 바가지를 마신다. 산행을 하며 얻은 교훈은 등산이 꼭 인생 같다는 느낌이다. 한걸음 한걸음 힘들었는데 그렇게 가다 뒤돌아보면 어느새 저만치 가 있다. 정상에 서면 땀과 고통은 사라지고 뿌듯한 보람이 남는다. 그렇게 우리 인생도 정성과 성실함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천왕봉을 다녀와서” - 박여랑 (1610년)  두류산 정상에서 이제막 돌아오니높은 봉우리 깊은 계곡 꿈에서도 아른아른그대여 좋은 싯구 없다 탓하지 마오미사여구로도 그 기이함 그려내기 어렵다네  이번 산행을 인도하신 ‘주간함양’ 신문사에 감사를 드리며 산행을 함께 하신 일행 모두에게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한다. 감사합니다.   박 종 환성결대학교 객원교수 (전 함양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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