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갑의 지리산 여행기 56편오는 9월 26일까지 함양예술마을 갤러리<다>에서 전시 중추석연휴…무진 화가의 일화수진홍지외(一畵收盡鴻蒙志之外:한 획으로 허공의 경계를 나누다). 그 예술의 깊은 향기. 독자제위 여러분 마음껏 맡아보시길 바랍니다.# 나는 기백산 자락 안심마을 개울가에 핀 이름 없는 한 그루 조선토종 금강소나무이다. 안심마을은 함양군 안의면 신안리에 있다. 나는 수백년 세월 이곳에서 살면서 용추계곡(이곳은 함양8경의 하나로 용추계곡과 기백산 금원산 등의 빼어난 경치가 장관을 이룬다)에서 흘러 내려오는 청정한 물들을 지켜봤으며 이른봄 냇가 한 그루 수양버들이 막 새잎을 돋아내 담채의 그림을 연출하는 것도 보았다. 겨울이면 폭설로 인해 마을이 설국으로 변한다. 참 아름다운 마을이다. 사시사철 밤이면 숱한 별들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무릉도원이다. 가히 천지가 교감하는 곳이다. 마을 이름도 그 얼마나 아득한가! 풀이하면 마음이 편안한 곳이다. 이곳에 노(老) 화가 한 분이 사는데 호는 무진(無眞)이요 성명은 정룡(鄭龍)이다. 그는. 경남 미술계의 태두 파민 정덕상의 아들로서 부친의 피를 이어받아 어릴 적부터 그림솜씨를 빼어나 화제를 모았었다.부친 파민은 파묵산수(破墨山水)를 즐겨 그렸다. 파묵이란 담묵으로 윤곽이나 용적 밑을 일차적으로 칠하고 그 뒤에 차차 농묵으로 덮어 습하듯이 하며 왕왕 초묵(焦墨)으로 그 윤곽선을 깨뜨리거나 한계를 분명히 하는 기법이다. 이에 반해 무진 정룡(이하 무진이라 칭한다)은 발묵(潑墨)산수를 선호했다. 발묵이란 먹물이 번지어 퍼지게 하는 산수화법을 말한다. 좀더 상세히 설명하면 주로 종이 위에 먹이 번져 퍼지는 효과를 얻는 방법으로 농묵이 담묵이나 물기를 따라 삼투압현상을 일으켜 번져가는 변화를 이용하는 것이다. # 함양군 안의면 신안리 안심마을에 아침해가 떠오르면…노 화가는 내 처소 소나무 군락지를 찾는다. 그는 이곳에서 두 손 모아 일월성신께 기도를 올린 후 소요유를 즐긴다. 무진은 전설 속 신선이 입을 법한 학창의를 즐겨 입는다. 심의(深衣:덕망 높은 선비의 웃옷. 백색 천으로 만들고 옷 가장자리에 검정비단으로 선을 둘렀다)를 입을 때도 있다. 굳이 이런 옛옷을 즐겨 입는 까닭은 무엇일까?무진은 말한다. “내가 입고 있는 옛옷 속에는 대자연 기운이 흐른다네. 이 옷 속에서 서기(瑞氣)가 승강출입(升降出入)하야 내 예술혼을 더욱 윤택하게 해 주니까 즐겨 입는 걸쎄” 이 시대 마지막 신선도 화가가 그린壽老人과 福老人# 내 처소에서 북쪽으로 약 5백미터 지점에 함양예술마을이 있다. 무진은 9월 11일부터 26일까지 예술마을 내 갤러리 <다>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비록 이 내 몸 땅 붙박이 식물이지만 어찌 이웃 사는 무진 어른 그림 감상하지 않을쏘냐? 나는 마치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고 비행하듯이 내 전용 실바람 타고 예술마을로 향했다. 나는 지금부터 발묵산수 대가 무진 어른의 일화수진홍지외(一畵收盡鴻蒙志之外:한 획으로 허공의 경계를 나누다). 그 예술의 깊은 향기 맡으려 하노니 독자제위께서도 동참하시길 바란다. # 누가 나에게 무진 그림 가운데 어느 작품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신선도>라고 답하리라. <신선도>는 유·불·선 가운데 선교(仙敎). 곧 도교의 신선사상을 바탕으로 발생·발달한 그림으로. 한 사람의 신선만을 그리기도 하고 여러 신선이 함께 있는 군상을 그린 경우도 있다. 신선도에 등장하는 신선은 모두 500이 넘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많이 그려지는 신선이 종리권(鍾離權). 여동빈(呂洞賓) 등 팔선(八仙)이며. 이 밖에 노자(老子)나 황초평(黃初平) 등도 자주 등장한다. 무진의 신선도. 목숨을 관장하는 수노인(壽老人)과 복을 불러들이는 복노인(福老人)이 등장한다. 두 신선 주변에 변재천(여자 신선). 복숭아를 든 동자가 서 있다. 변재천(辯才天. Sarasvati)은 인도 신화에 나오는 지혜 음악의 여신이다. 여신은 백사(白蛇)를 장식한 보관(寶冠)을 쓰고. 일면팔비(一面八臂)의 상(像)에서는 보주(寶珠)와 검과 궁시(弓矢) 등을 가지고 있으며. 일면이비(一面二臂)의 상에서는 왼쪽 무릎을 세우고 비파를 타고 있다. 원래는 물의 신으로. 하천의 흐름 소리에서 음악의 신 또는 변설(辯舌)의 신이 되었다고 한다.내가 무진에게 말했다. -저는 이 그림을 감히 길상과 개운을 불러드리는 벽사화라고 부르고 싶군요. 이 말에 무진은 두 눈을 부릅뜨며 “아닐쎄. 나는 이 세상에 벽사화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네. 그냥 청정무위의 세계를 그렸을 뿐이네”여기서 말하는 무위는 탐욕과 분노 등에서 초연하는 중용의 의미를 함축한다.▲ 꿩# 이어 나는 그림 <꿩>을 감상했다. <꿩>은 가로 69cm 세로 48cm 그림으로 비교적 화면이 큰 전경구도의 작품이다. 왼쪽 하단에 소를 몰고 가는 농부가 걸어간다. 농부는 창공을 나는 꿩 두 마리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꿩 후면에 지리산 같은 어머니 산이 펼쳐져 있다. 산세는 주로 고원법을 이용하여 좌 중 우 세갈래로 나누었으며 중앙을 위주로 좌우에서 이를 보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그림 중앙엔 함양 상림 숲 인양 수천여그루의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산은 높고 삼림은 울창하여 그 기가 그림 전체에 퍼지도록 하고 있다. 나는 꿩을 자세히 관찰했다. 활 모양을 한 날개짓! 무진은 날갯죽지부터 깃털까지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점점 변하는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재현해내고 있다. 꿩 주변엔 바람도 불어댄다. 꿩 머리깃털 등의 깃털 배의 깃털 등은 사모법(絲毛法)으로 표현한 듯 싶다.이 그림 속에 담긴 화두는 뭘까? <장자>의 덕충부(德充符) 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생명야 기유야단지상 천야(死生命也 其有夜旦之常 天也…하략)풀이하면 사람은 형체가 생긴 후로 줄곧 형체가 소멸되는 순간을 기다리는 과정을 밟아간다. 다시 말하면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이다. 나는 무진의 <꿩>에서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우리네 삶을 사뭇 느꼈다. 이 백호 기운 마음껏 몸 속에 받아 가시게나! # <백호도>. 이 그림은 민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백호가 형형한 눈빛을 강하게 내뿜고 있다. 무진의 백호도는 화면을 압도하는 원색과 강열한 선(線)이 특징이다.정교하고 세밀한 필법을 사용하여 공들여 채색한 흔적이 역력하다. 백호도에는 반드시 귀치가 그려져 있다. 귀치란 혀밑샘의 결석과 비슷한 것으로 혀밑샘 부위에 돌처럼 딱딱한 멍울이 생긴 이빨을 말한다. 귀치는 백호의 위엄을 돋보이게 한다. 이 이빨 속엔 요사와 사물을 물리치고 근접할 수 없는 주력이 있다고 한다. 무진은 나에게 백호도를 설명한다. “예부터 백호는 상서로운 영물(靈物)로 여겨왔다네. 청룡(靑龍)·주작(朱雀)·현무(玄武)를 가리켜 하늘의 사신(四神)이라고 불렀지. 이들 4신은 하늘의 사방(四方)을 지키는 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백호는 서쪽의 수호신이라 할 수 있네. 서쪽에는 28수(宿) 중 규(奎)·누(婁)·위(胃)·묘(?)·필(畢)·자(?)·삼(參)의 7개 성좌(星座)가 있는데. 백호는 '묘' 성좌를 다스린다고 하며. 일설에는 '삼' 성좌가 백호였다고도 하네. 어쨌든 이 백호란 놈 우주만물의 엄청난 기운을 소지하고 있으니 자네 소나무야. 이 백호 기운 마음껏 몸 속에 받아 가시게나! 허허허” ▲ 달마상# 무진 작가가 달마 그림 쪽으로 걸어간다. 나도 따라갔다. 달마는 중국 선종(禪宗)의 창시자이다. 달마는 남인도 향지국(香至國)의 셋째 왕자로. 후에 대승불교의 승려가 되어 선(禪)에 통달하게 된다. 520년경 중국에 들어와 북위(北魏)의 뤄양에 이르러 동쪽의 쑹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서 9년간 면벽좌선(面壁坐禪)하고 나서.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다는 이(理)를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 선법(禪法)을 제자 혜가(慧可)에게 전수하였다. “난 원래 달마 그림을 안 그렸어. 왜냐하몬 많은 못된 놈(화가)들이 말이야. 달마그림을 집에 걸어두면 뭐시냐 집안에 재물이 모이고 만복이 오느니 하면서 혹세무민 하는 꼴이 보기 싫어서였지. 달마는 결코 영험부적이 아냐. (내가 말이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 스님이 그럼 영험부적이 아닌 한 사물로 한번 그려보시구려 권유하길래 좋소 그리되 달마 뒷모습을 그리겠소이다라고 답했지. 달마가 9년면벽수행하는 바로 그 뒷모습을 재현해보고 싶었던 거라”그러니까 무진은 달마 정면이 아닌 뒤편 달마를 소묘한 것이다! 나는 무진의 <달마도>를 (오랫동안) 응시하며…그 옛날 달마가 수행했던 쑹산을 향해 시간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길에서 달마는 나에게 이런 영성적(spirtual) 메시지를 전했다.쑹산 토굴 속에서…달마가 등을 뒤로 한 채 나에게 말한다. “부처님의 심인((心印)은 남에게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처의 마음을 밖에서 찾지 말고 눈을 들려 자기 영혼을 응시하라!”또. 달마는 이런 말을 했다. “원망을 지었으니 억울함을 참고(報怨行) 무슨 일이든 인연으로 받아드리며(隨緣行). 사물을 탐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無所求行) 진리대로 살아라(稱法行)” # 나는 무진의 그림 감상을 마친 후 작가와 함께 예술마을 옆 용추계곡으로 내려갔다. 사방은 먹구름 한점 없이 청명하다. 그뿐이랴? 향기로운 실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왔다. 어이쿠야! 물소리도 아무런 소란함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나는 무진에게 말했다. -선생님 그림 핵심은 무위지위((無爲之爲)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그림은 대개 안심마을 같은 곳에서만 창작될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선생님은 가히 복 받은 작가라 할 수 있겠습니다.-그럼 그렇고 말구. 내 고향 산천은 정말 아득한 곳이네. 내가 사는 안심마을 술 익고 도 깊어지는 무릉도원이지 하하하-나중 세월이 흘러 후학들이 선생님을 어떤 사람으로 평가해 줬으면 합니까?“내 고향 함양이 예향(藝鄕)으로 자리 잡는데 온 몸을 바친 사람? 공명심 버리고 붓 한 자루 들고 유유자적 풍류를 즐긴 사람? 이런 점수를 받으면 족하네 그려”-부디 건강하시어 선생님 소원이신 함양. 예술로 가득 찬 고을 되는 걸 지켜보시길 기대합니다. -선생께서는 함양 미술계의 거목이십니다. 계속 걸작을 탄생시켜 함양을 빛내주십시오.이 말에 무진은 멋쩍은 듯이 껄껄 너털웃음으로 눙쳤다. 그 웃음이 실로 넉넉하다. 그 웃음은 뭐랄까? 꽃잎이 하나하나 펼쳐지면서 꽃망울이 활짝 피는 모습처럼 찬란하다.그렇다 찬란(?爛)이다!▶사족=무진의 작품과 연보. 포토라이브러리를 보려면? 네이버 인터넷 주소창 <무진 정룡>으로 들어가면 된다. 구본갑|본지칼럼니스트busan7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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