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의 시대  문복주(본지 논설위원)  짝퉁의 사전적 의미는 가짜. 모조품. 이미테이션 등의 의미를 가진 신조어 또는 은어다. 진퉁. 짜가리. 가리지날이란 유사말로도 불리운다. 얼마 전 부산에서 유명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이 유명 상품 운동화를 짝퉁하여 7억원을 벌고 인터넷과 쇼핑몰에서 33억원의 매출을 올리려다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루이비통이 누이비똥. 샤넬이 샤날. 삼성(SAMSUNG)이 삼맹(SAMMEUNG). 아디다스가 아디도스. 글자 하나로. 무늬 하나로. 상표 한 획으로 진품이 짝퉁으로 바뀌는 짝퉁의 시대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짝퉁기술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능하여 정부의 곤혹은 말이 아니다. 그래서 광장 한가운데서 짝퉁 물품을 태우는 다비식의 전투적 홍보에 시민들은 이해와 아까움을 더 한다.사실 진짜 짝퉁의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의 짝퉁에는 혀를 차는 정도가 아니라 혀를 내 두르거나 기가 차 졸도 한다. 가짜 달걀. 가짜 결혼. 가짜 만두. 가짜 보톡스. 가짜 비아그라. 가짜 고춧가루. 짝퉁 소녀시대 아이돌 걸스 등 종별. 품종을 가리지 않는다. 더 놀라운 것은 심지어 한 도시에 짝퉁 경찰국이 생기어 짜가 경찰국장이 부임하고. 짜가 경찰국을 세우고. 시민을 상대로 짜가 경찰관을 모집한다. 가짜 경찰증을 발급하고 경찰복을 입은 짜가 경찰관들이 택시와 시민을 상대로 벌금 딱지를 발급하며 영업 경찰행세를 해 왔으니 대국을 이해하려면 그 만한 간뎅이도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중국은 이러한 짝퉁 배경에 대해 산자이 문화(山寨文化)라고 부른다. 산자이란 산적들의 소굴이란 뜻이다. 짝퉁이라 부르는 중국 사회전반에 확산되어 형성된 사회적 문화현상을 가리킨다. 그들의 목적은 그저 물불을 가리지 않고 한 번의 일확천금 한 몫을 챙기면 다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짝퉁의 시시비비를 논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명품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명품이란 뛰어나거나 이름 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이다. 예를 들면 세계적 스위스 시계. 독일 슈미트 칼. 루이뷔통 가방. 샤넬 화장품. 아디다스 스포츠 용품. 구찌 핸드빽. 이탈리아 가구. 몽블랑 만년필. 쉐도우 화장품. 삼성 금성 티비. 아이티. 등등 누가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인정하고 아는 제품이다. 명품에는 역사성이 있다. 역사가 증명하지 않는 제품은 유행품이 될지는 몰라도 명품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다. 제품의 우수성을 소비자가 인지하기까지 시간의 검증을 거치지 않으면 명품이 되지 못한다. 짝퉁은 그러한 진품의 질과 시간의 과정을 생략한다. 달리는 명마의 등에 자기가 타고 가는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싼 값에 어부지리로 마치 자기가 명마를 탄듯한 착각에 빠져 들게 하고 남들에게주목 받고 인정과 찬사를 받고 싶어 하는 값 싼 저질의 심리가 작용하여 유혹과 술수에 쉽게 빠져들게 한다. 하지만 미친 말에 탄 사람의 최후는 죽음에 까지 이른다. 명품을 만들기 까지 수대에 걸쳐 노력하고 이룩한 그 장인의 숭고한 뜻을 모르는 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명품을 똥품으로 깍아내리는 범죄를 생각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 함양에도 짝퉁의 소문이 돌고 돌아 귀를 기울여 본다. 짝퉁 이야기가 물품이 아니라 문화와 문학이라는 추상성에도 나돈다는 말에 흥미가 진진하다. 아마 유사 명칭 사용 등에 관한 이야기 중에 하나인 것 같다. 군민의 공감대에 의해 수십 년간 인정돼 온 공공성 강한 함양팔경이 어느 날 갑자기 한 개인에 의하여 1경이 검증도 없이 추가되어 함양구경으로 바뀌어 버리고 전국에 알려 진다. 이해하기 힘들다. 또 한 지역에서 30년의 역사성을 가진 지리산문학회의「지리산문학상」이 어느 날 개인의 주도로 갑자기 생긴 글자 하나 만 첨가된 「지리산문학인상」을 만들어 전국에서 둘 다 작품 공모를 한다는 것은 문학의 웃음거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게. 그것이 그것인 것처럼 혼동시키는 것이 작퉁의 속성이다. 음악의 표절에 관한 이야기는 심심찮게 들려 왔지만 작은 지역에서 문학의 짝퉁시대를 열어 문학인에 혼동을 주는 것은 자기 문학의 얼굴에 침을 뱉는 보기 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행동자유와 기득권은 여차하고 더 좋은 명품 문학의 정신이 무엇인가를 가지고 고뇌해야 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선비의 고장에 함양 문학인들은 아류가 아닌 명품문학을 위한 진정한 자기 반성들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문학에도 도와 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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