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의원 문정섭60년대만 해도 소위 한센 환자들이 수명씩 무리를 지어 농촌지역에 동냥을 다녔다. 이때만 해도 모두가 가난했던 때라 그들의 목적은 동냥 외에도 뱀을 잡아 팔기도 하고 또 보양용으로 탕을 지어 먹기도 했던 터라. 동냥을 한 보리쌀과 잡은 뱀을 넣은 배낭을 지고 다녔다.필자의 집이 국도 26호선 함양에서 남원 가는 노선 길가 함양읍 죽림리 가재골에 있었는지라 이분들은 날이 저물면 5∼6명 남녀가 짝을 지어 필자의 집에 자기도 하였다. 그때는 그들 일행이 수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풀이나 나무를 하는 머슴들이 없는 비수기에는 차마 거절을 하지 못하고 필자 집에서 자도록 허락을 해줬다.야간에 전직교사였던 어떤 이는 밝지도 않은 등잔불 밑에서 초등학교 5학년인 필자에게 한문공부도 가르쳐 주었고. 이조시대 역대 임금님들의 이름을 가르쳐 주었는데 단 30분도 안돼서 필자가 암기를 하였더니 머리가 좋다며 열심히 공부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함양읍 죽림리 가재골 주변 돌무덤에는 당시 집을 허물었던 썩은 짚이 많아 그 사이사이에 여름 장마철이라도 지나고 날이 갠 날에는 소위 큰 누렁이뱀과 검은 뱀들이 자주 나타났다.한센 환자들에게 여기는 뱀이 많다는 얘기를 해줬더니 그들은 필자에게 뱀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뱀은 뼈가 통뼈로 이어져 독사를 제외한 어떤 뱀도 꼬리를 잡으면 머리를 돌려서 물지 못한다는 원리였다. 그리고 돌담장이나 좁은 굴에 뱀이 들어갔을 때 꼬리부분을 잡고 그냥 잡아당겨서는 절대로 뱀을 잡을 수 없다며 이때는 조금씩 늦춰주웠다가 살짝 살짝 당겨야 뱀을 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원리였다. 필자는 한센 환자들이 시키는 대로 장마철 후나 평상시 뱀을 잡아 두었다가 그분들이 오면 뱀을 전달했다. 뱀 값은 그들이 동냥한 보리쌀이 고작이었다.보건소에 근무했던 1987년도의 일이었다. 유림면 성애마을에 고구마를 캐러갔던 한 인부가 고구마가 ○○○처럼 생겼다는 말이 화두가 되어 함양군내 경찰관서와 보건소가 발칵 뒤집힌 경우가 있었다. 필자가 경남도의원에 당선되어 자주 찾았던 유림면 성애 마을에 들러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이제 그때의 뱀 값을 쳐달라고 하였더니만 한 분이 다른 한 분을 가리키며 "저분이 뱀 잡는 도사"라는 것이었다. 우린 그때의 정을 생각. 지난 도의원 선거 때 한센환자 23명이 필자를 지지해줬다는 인사를 받고 이제야 50년전 뱀 값을 받았구나 하는 마음의 위로를 가진 바 있다.그분들은 정부의 보조금 외에도 축산 등을 하면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으나 아직도 미흡한 실정인바 계속적인 지원이 되어야 하겠고. 사기를 높이기 위해 정책으로 연중 1회 소록도에서 전국적인 한센의 날을 맞아 친목을 도모하는 행사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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