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정일품농원은 이른바 승학(乘鶴)의 기가 살아 있는 곳. 풍수학자들은 "신령스런 학들이 이곳 형국에서 잠자면 영재를 탄생시킨다"고. 정도상 선생. "향리 지곡면을 전통음식 메카로 키우겠다!"지리산 여행기35편"아무에게도 가르쳐 주지 말아야지. 바로 이곳이 우리나라 해맞이 1번지라는 걸!" 이화여대 건축학과 임석재 교수 "정여창 고택 이렇게 감상하라"왕년의 정치풍운아 낙향하여 청국장 빚는 사연개평마을 황점숙(89세)할머니 전통요리 계승할 터된장 명인 최찬희(68). 황갑연(67). 김정림(56) 여사 만나면 여행 즐거움 배가!   정여창 고택. 다른 데에서 볼 수 없는 묘한 공간미▲ 지곡 장류 명인 최찬희. 황갑연.김정림 여사가 청국장 만드는 법 특별초빙교수로 뛴다.나는 가끔 함양읍내(동문사거리) 강호서점을 찾는다. 시골 책방 안을 배회하노라면 희미한 옛 생각들이 떠오른다. 시골 책방을 무대로 한 영화가 생각나고…. 이명세 감독 연출. 김혜수 주연 <첫사랑> 최인호 원작 배창호 연출 <천국의 계단> 주무대가 시골 책방이다. 10여분 책방 안을 배회했으나 볼만한 책이 없다. 이런 나의 표정을 지켜본 주인장. "워낙 시골인지라 허허" 나는 말한다. "장사 안 되도 오래도록 하십시오. 서점은 그 마을의 문화 아지트입니다" 나는 그냥 나오기 미안해 주인장에게 책 주문을 한다. 강호서점 주인은 손글씨를 아주 잘 쓴다. "임석재라고예? 한길사에서 나왔다. 빠르면 모레쯤 도착할 깁니더"나는 임석재가 최근 펴낸 <나는 한옥에서 풍경놀이를 즐긴다>를 주문했다. 임석재.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거쳐 미국 미시건 대학교에서 건축학 석사.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건축학 박사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로 일한다. 저서로는 <우리 건축과 서양건축의 만남>. <한국 전통 건축과 동양사상>. <한국의 전통공간>. <한국의 옛집> 등이 있다.임석재가 쓴 이 책을 보면 함양군 지곡면 이야기가 줄줄이 사탕처럼 펼쳐진다.임석재 책 <나는 한옥…> 88페이지를 펼치면 지곡 개평마을 정여창 고택 사진이 나온다. 정여창 대감이 사랑채 안에서 책을 읽고 있다. 잠시 후 대감나리. 책을 덮고 사랑채 대청에 나와 살포시 앉는다. 그리고 마당을 바라본다. 손에 잡힐 듯한 수목과 꽃이 피어있다. 임석재. 그는 마당을 바라보고 있는 대감의 액션을 이렇게 풀이한다."정여창 고택은 다른 데에서 볼 수 없는 묘한 공간미를 자랑한다. 나도 정여창 고택 사랑채 대청에 앉아 봤는데. 이 대청에 앉으면. 집 안 전경이 모두 보인다. 왜 정여창 대감은 책을 읽다 말고 대청에 나와 앉았을까? 가장으로서 집 안 전체를 한눈에 파악하기 위함일 것이다"나는 임석재의 이론을 곱씹어보았다. "아하. 한옥에서 대청. 그 대청에 앉아 집 전체를 조망한다는 것은 가장의 위엄을 의미하는 거로구나!"나는 지난 연말. 서울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미국서 실내 인테리어를 공부하고 현재 미 8군 시설관리팀에서 근무하는 미세스 문으로부터."연말. 함양에 내려와 정여창 고택 등을 둘러보고 한옥의 운취를 맛보고 싶다" 곁들여 "마음 같아서는 정여창 고택에서 하룻밤 자고 싶다만 여건이 허락 안될 것 같지? 정여창 고택 비슷한 한옥에서 하룻밤 잘 터이니 조치 취해 달라"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미세스 문 일행이 개평마을 정여창 고택을 찾았다. 정여창 고택은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에 있다. 정여창 고택은 정여창 선생이 죽은 후 선조 무렵(1570년대)에 건축됐다. 1만㎡ 정도의 넓은 집터에는 여느 양반가옥과 마찬가지로 솟을대문. 행랑채. 사랑채. 안채 등 여러 건물들이 서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사랑채는 ㄱ자 팔작집으로 돌 축대가 높직하고 추녀는 비상하려는 듯 날개를 펴서 시원스럽다. 사랑채 옆 일각문을 통해 안채로 들어서면 마당이 직사각형으로 길게 뻗어 아래채와 연결된다. 이들은 정여창 고택 외 오담고택 풍천노씨 대종가 등을 둘러보고 원더풀을 연발했다. 특히 이들은 별들이 총총 피어있는 개평마을 밤하늘을 보고 탄성을 내질렀다.  정여창 16대손 정도상 김영삼 전대통령 측근으로 이름 날려한옥마을 사이로 옥계천이 흐르고 그 냇가 옆에 기가 막힌 노거수(소나무)가 몇 그루 서 있다. 나는 이들을 데리고 그 소나무를 지나 정여창 16대손 정도상 선생 한옥집 '정일품농원'을 향했다. 바로 이곳이 이들이 그 날 밤 머물러야 할 숙소인 것이다. 정도상 선생 한옥집은 옥계천 너머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해있다. 언덕에 올라서니 강원도 울진 등지 금강송으로 지어진 한옥이자뭇 늠름하다.정여창 16대손 정도상 선생…. 그는 한때 한국 정치계를 주름 잡았던 풍운아였다. 김영삼 전대통령 사조직 민주산악회 서울 송파지부장을 역임하면서 최형우 김동영 김우석(전 건설부장관) 오경의(전 마사회장) 이태(소설 <남부군> 저자) 등과 산천을 주유하며 한국 정치를 디자인한 양반이다. 그러다가 늘그막에 수구초심. 안태고향 지곡으로 내려와 한옥을 짓고 된장 청국장을 생산하고 있다. 정 선생은 "이 곳을 첼로된장으로 그 명성이 자자한 돈연스님. 순천 선암사 수제차 단지처럼 만들고 싶다"고 한다."개평마을에는 황점숙(89세)할머니 외 전통요리 명인이 생존해 있네. 이들이 타계하기 전 비법을 전수 받아 함양의 명물로 만들고 싶다네" 황 활머니는 신선로의 명인이다. 신선로는 궁중요리의 대명사 신선로(神仙爐)는 열구자탕(悅口子湯). 구자탕. 탕구자라고도 한다. 여러 가지 어육과 채소를 색스럽게 돌려 담고 장국을 부어 끓이면서 먹는 음식이다. 이것은 열구자탕의 의미는 구자는 입을 가리키는 말로 입을 즐겁게 해주는 탕이라는 뜻이다. "신선로는 궁중요리가 아니라 원래 조선 전기 문신 정희량의 청빈정신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정희량은 무오사화를 겪은 다음 속세를 피해 산중에 은둔하여 살았는데 이때 대접모양의 그릇 가운데에 숯불을 담고 주변에 채소를 담아 익혀 먹었다한다. 정희량이 죽은 뒤 이 화로가 세상에 알려졌는데 정희량이 신선의 기풍이 있었다고 하여 그가 사용한 화로를 '신선로'라 불렀다하네. 나는 할머니에게 삼고초려 신선로 비법을 배워 함양 신선로를 국제화시켜보고 싶다네" 정도상 한옥은 총 3채다. 부속시설로 황토방이 있다. 한옥을 둘러보니 된장 청국장 발효시설이 있고 전주 한옥마을처럼 레저족들을 위한 잠자리가 마련되어 있다.나는 일행과 떨어져 정도상 선생과 도란도란 함양 식품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원래 요리는 명가 집 요리가 최고입니다. 안동 명가 경우 안동소주. 토란이 들어간 서어국 등이 유명하잖습니까? 어디. 개평마을이 안동 보다 (유학사상이니 요리분야에서) 떨어질 게 무엇 있나요. 하루빨리 황 할머니 같은 요리명인들로부터 요리비법을 전수 받아 브랜드화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개평마을에 황 할머니 말고도 고수가 많죠?""최찬희(68). 황갑연(67). 김정림(56) 여사께서 매일 이곳에 와 된장 청국장 만드는 법을 전수하고 있네"된장 청국장 만드는 법은 이곳저곳 할 것 없이 엇비슷하다. 다만 정도상 청국장은 유림 혈맥이 흐르는 개평마을에서 생산된다는 점이 이점이라면 이점이다. 무슨 말이냐고? 명가에서 전승되는 된장 띄우는 비법. 아무래도 남다르다. 정도상 청국장은 이렇게 만든다."청국장은 메주콩을 10∼20시간 더운물에 불렸다가 물을 붓고 푹 끓여 물씬하게 익힌 다음 보온만으로 띄운 것이지. 그릇에 짚을 몇 가닥씩 깔면서 퍼담아 60℃까지 식힌 다음 따뜻한 곳에 놓고 담요나 이불을 씌워 45℃로 보온하면 고초균(Bacillus subtilis)이 번식하여 발효물질로 변하거든. 고초균은 40∼45℃에서 잘 자라며. 단백질 분해효소·당화효소 등의 효소가 있으므로 소화율이 높지. 이 세균은 공기 중에도 많이 있지만 볏짚에 많이 들어 있으므로 청국장을 띄울 때 콩 사이사이에 볏짚을 넣고 띄우면 매우 잘 뜬다네"  산수유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담북장·막장 배워보세 촌야(村野) 사람. 고기가 없어도 좋은 맛 나는 된장 있으면 아무 걱정이 없다. 정도상 선생과 된장독을 향했다. "늘그막에 된장제조공부 한다고 진땀이 나네. 그런데 무척이나 재밌네. 된장을 제조하다 보면 뭐랄까? 도의 경지에 이른다네. 된장은 말일세. 자연의 여섯 요인 비 바람 음 양 어둠 빛의 영향을 받는 것같아. 마치 도자기 굽는 것하고 비슷해. 된장제조방법도 공부하면 할수록 재밌고. 된장의 종류는 간장을 담가서 장물을 떠내고 건더기를 쓰는 재래식 된장과 메주에 소금물을 알맞게 부어 장물을 떠내지 않고 먹는 개량식 된장. 2가지 방법을 절충한 절충식 된장 등을 들 수 있겠지. 그밖에 계절에 따라 담그는 별미장으로. 봄철에 담그는 담북장·막장이 있고. 여름철에 담그는 집장·생황장. 가을철에 담그는 청태장·팥장. 겨울철에 담그는 청국장 등이 있다는군. 재래식은 11∼12월경에 콩으로 메주를 쑤어 목침만한 크기로 빚어 2∼3일간 말린 후 볏짚을 깔고 훈훈한 곳에 쟁여서 띄운다 하데?"30∼40일이 지나 메주가 잘 떴을 때 메주를 쪼개어 볕에 말려 장독에 넣고 하루쯤 가라앉힌 말간 소금물을 붓는다. 메주콩과 물·소금의 비율은 1:4:0.8 정도가 알맞다. 맨 위에는 빨갛게 달군 참숯을 띄우고 붉은 고추(말린 것)를 꼭지째 불에 굽고 대추도 구워서 함께 띄우는데. 이것은 불순물과 냄새를 제거한다는 관례에 따른 것이다. 20·30일이 지난 후 메주를 건져서 소금을 골고루 뿌리고 간장도 쳐서 질척하게 개어 항아리에 꼭꼭 눌러담고 웃소금을 뿌린다. 빗물이 들어가지 않게 주의하면서 망사 등으로 봉해서 햇볕을 쬐면 메주가 삭아서 된장이 된다.정도상 선생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내가 왜 늘그막에 힘들여 한옥 짓고 된장 청국장 만드느냐? 돈 벌려고? 아닐세. 소요유를 즐기고 싶어서일세. 나. 사실 된장하고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일세. 그냥 관광객들 서울에 사는 내 지우들. 내 고향 지곡에 찾아오면 볼거리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애. 내가 야단법석을 차려준 셈이야. 이 야단법석에서 하룻밤 유하면서 옛 선조들은 어떤 방법을 된장 청국장을 만들었나 공부하려고 학숙 하나 차린 셈이야??정도상 한옥에서 우리는 전통 구들 방식의 아궁이 체험했다.한옥 뒤편 솔밭에 가서 나뭇가지를 줍고 이를 아궁이에 때면서 감자나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이때쯤 미세스 문이 우리 곁에 다가왔다. "정 선생님 한옥이 참 좋군요. 한옥에서 산다는 것은 자연과 함께 한다는 거죠. 방문을 열면 자연이 시원스레 펼쳐지는데 계절에 따른 미묘한 변화가 피부로 와 닿아요. 오묘하게 변하는 자연의 소리도 몸소 느낄 수 있고요. 삶의 깊이가 생긴다고 할까요""허허 저도 지금 한옥의 특징에 대해 공부하는 중입니다. 사랑채와 안채. 부엌은 어떻게 생겼을까? 사당과 행랑채. 화장실은 어떻게 생겼을까? 한옥은 어떻게 짓는 걸까? 한옥은 어떤 도구로 만들까? 온돌과 마루에 숨은 비밀 등을 알고 싶어요. 우리 같이 이 공기 맑은 지곡에서 한옥 공부해 봅시다"아침 5시 신새벽. 나는 정도상 한옥 주변을 배회했다. 하늘에는 별들이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이 초롱초롱했고 상큼한 공기는 뭐라 표현할 수가 없다. 이윽고 아침 7시께. 정도상 한옥 뜨락에서 해맞이를 했다. 해가 떠오르는데 소리가 들린다. 둥둥둥. 해가 천하를 두드리는 소리다. 다른 사람은 안들리겠지만 내 귀엔 들렸다. 총 28번. 욕계의 6천과 색계의 18천. 무색계의 4천 합쳐서 28천. 모든 하늘 나라 대중이 들으라고 둥둥둥 해가 천하를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에게도 가르쳐 주지 말아야지. 바로 이곳이 우리나라 해맞이 1번지라는 걸!    본지컬럼니스트busan7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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