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이 지나고 춘분이 지났음에도 올해 3월 날씨는 아직 험상하다. 햇빛 나는 날이 반가울 만큼 눈비가 잦고. 바람도 솜털마냥 보드랍기보다는 아직 앙칼지고 차가운 겨울입김이 남아있다. 때 아닌 3월 기습폭설로 아침에 어리둥절하여 종종걸음치며 출근하는 도시 사람들을 텔레비전에서 본다. 그래도 봄은 봄으로 우리에게 온다.며칠 전 지리산 아래 엄천강이 흐르는 마을에 갈 일이 있어서 들렀다가 강가를 홀로 거닐었다. 날씨도 화창하여 좁게 난 밭길을 한적하게 거닐면서. 땅을 보니 누렇게 마른 풀들 사이로 파랗게 돋아나는 쑥. 냉이 같은 봄나물 새싹들이 보였다. 나는 풀을 조금 뜯어 향을 맡아보았다. 봄향기의 은은한 향이 겨우내 닫혀 있어 퀴퀴한 내 폐에 생기를 불어넣어 몸의 세포들이 기지개를 켜며 깨어나는 것 같았다. 흐르는 큰 냇가에 앉아 소리내며 흐르는 물 소리를 한 동안 들었다. 어찌 들으면 소란스럽게 들리는 물소리가 봄을 듣고자 하는 내 마음 때문인지 평화롭게 느껴졌다.우리가 늘 마주하는 자연도 이렇게 늘 새로운 얼굴로 다가온다. 우리말로 봄을 봄이라고 하는 이유는 ‘새로 바라 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영어로 봄을 단순히 스프링(spring). =솟아남. 샘으로 표현한 것보다는 더 근원적인 이해가 있는 듯하다. 정말 우리는 겨울잠을 깨고 새로 바라봄이 필요하다.우리는 진정 무엇을 보며 살아가고 있는가? 생명을 생명으로 경외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단단한 껍질을 뚫고 힘겹게 돋아나는 꽃망울에서. 산을 타고 흘러내리는 수천억만개의 물방울에서. 언 땅에 풀리고 감자씨앗을 품는 밭고랑에서. 바람타고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속에서 진정 하늘에 계신 분의 놀랍고도 새로운 사랑과 은총을 보며 누리고 살고 있는가? 아니면 생명이 움트는 땅과 강을 단순히 사고 팔고 재산 축적의 수단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가? 내 욕망을 채워 줄 소유물로 보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 인생은 모두가 짧게 봄소풍을 나온 자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소풍을 가면 보는 것이다. 내 것 만들려고 나무에. 돌에 자기 이름 새기느라 정신없다가 허겁지겁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찬찬히 보고. 감탄하고. 놀라워하고. 이런 소풍을 허락해 주신 분에게 감사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본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분명히 매일 엉뚱한 마음으로 보고 있다. 육안(肉眼)으로만 보지말고 심안(心眼)으로. 영안(靈眼)으로 바라봄이 절실해지는 때이다. 봄이 왔다고 봄은 아닌 것 같다. 봄을 진정으로 보는 눈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봄을 맞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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