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우 현 경상대학교 겸임교수하루에도 몇 번씩 지리산을 바라본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창문을 열고 맑은 공기마시며 지리산을 쳐다본다. 천왕봉이 반긴다. 오늘도 기분 좋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길한 조짐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한다.청와대 근무 시절이었다.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정권 교체기였다. 이범관 서울지검 차장검사(현 한나라당 국회의원)가 민정비서관으로 발령받아 왔다. 그는 부임 첫날 민정비서실 全직원과 상견례를 하면서. 자기소개시 기억할 수 있는 특색있는 소개를 하도록 요구했다. 당시 17명의 직원 중 3명만 계속 근무하고 나머지 14명은 원 소속기관으로 복귀하게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함양이 고향이고. 어릴 적 소먹이고 나무하던 곳이 지리산이라고 말했다. '지리산에서 소먹이던 사람'이라는 소개가 순박하고 우직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는지 계속 근무자 3명에 포함되어 청와대에서 3년을 더 근무할 수 있었다.지리산의 덕을 단단히 본 셈이다.60여년을 살아오면서 지리산 천왕봉에 세 번 올랐다.지리산에 처음 올랐던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이다. 역사선생님께서 지리산의 비극을 이야기하시며. 함양사람이면 마땅히 지리산을 올라가 보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 말씀은 함양사람인 나를 자극하였고. 친구 3명과 주먹밥 한 개씩을 준비하여 산을 오르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우리는 "다친다. 조심해라"라고 말씀하시는 어른들의 충고도 귓등으로 흘리며 험준한 칠선계곡을 뛰다시피하여 올라갔다. 함양의 열정을 가지고 처음으로 다다른 천왕봉! 그 정상에서. 우리는 발아래 펼쳐진 시원스런 세상을 탁트인 가슴으로 바라보았다. 온 가슴으로 함양을 느꼈던 그때의 그 감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두 번째 지리산을 올랐던 것은 5년동안 근무했던 청와대를 떠나기 얼마 전이었다. 의신마을뒤 빗점골에서 선비샘을 거치는 코스를 택하였다 덕평봉 남쪽능선을 따라가다보면 주위가 평평하고 넓어서 야영하기좋은 곳이 나타난다 그곳에 무덤하나가 있고 무덤의 돌축대아래 샘이 있는데 그샘을 선비샘이라 부른다.선비샘에는 사랑받고 대접받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과거시험에 여러차례 실패한 한 선비가 낙담하여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과거시험은 포기했지만 사람들로부터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자식에게 자신이 죽으면 샘위에 묻게 했다 샘물을 먹기위해서는 누구나 선비무덤을 향해 머리숙여 인사를 해야만 한다 생전의 소원을 무덤속에서나마 풀게 되었다. 후에 사람들은 과거운이 없어 시험에 계속 떨어져 불우하게 일생을 보낸 선비를 위로하기 위해 이샘을 선비샘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선비샘위 무덤가에 앉아 올려다본 하늘에는 오고가는 구름이 천태만상이었다 지난 봄 어느 토요일.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세 번째로 지리산에 올랐다. 10대의 그때처럼 빛의 속도로 오르지는 못했다. 나이의 무게를 진 채. 산이 주는 여유를 만끽하며 천천히 올라갔다. 구상나무 향내 속에 무성한 산죽순을 따서 씹으며. 일행과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걷는 것이 또다른 즐거움이었다. 홍송이 군락을 이룬 숲에서 산새들이 어울어져 살아가고 있으니 영락없는 꿈의 동산이었다.지리산은 태산이다. 험준한 산이기에 삶의 즐거움도. 흥망성쇄도. 그리고 민족상잔의 아픔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세월의 탓이련만. 지리산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잊고 살 때가 많다. 그 이야기들을 나누기 위해서는. 지리산에 한걸음 더 다가가야 한다. 지리산을 휴식과 재충전을 위한 쉼의 공간으로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다.조상이 행복한 나라보다는 후손들이 행복한 나라는 미래가 있다 우리세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는후손들이 행복하게 해 주는 일이다 지리산의 생태환경과 역사. 문화유산을 복원하고 접근성을 개선하여 사람들의 일상의 공간으로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지리산 문화유산이 상당부분 유실되고 말았지만 이제라도 남아있는 역사의 흔적을 잘 살려야한다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역사를 되살리고 제대로 기억하는 분들이 돌아가시기전에 남은 이야기를 채록하는 등 지리산만의 서사가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해야 한다. 남북분단의 아픈 문화흔적까지도 산교육의 장이 되도록하면 문화관광의 효과가 클 것이다. 지리산이 역사와 문화 휴양지로 거듭나게 해야한다지리산 댐을 건설하는 것도중요하지만 지리산 둘레에 철길을 놓고. 귀향민들의 정착촌을 만들고 지리산이 품고있는 이야기를 재현해내는 것이 인간과 자연을 조화시키는 길이 될 것이다. 속깊은 이야기를 풀어 놓는 다정한 지리산이 우리가 바라는 지리산이 아닐까.함양 어디서나 지리산 천왕봉을 볼 수 있다. 지리산이 어미처럼 함양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이 함양의 어미같은 존재라. 지리산을 빼놓고 함양을 논할 수 없다. 그러기에 지리산 천왕봉이 희망이요 꿈이 될 수 있다. 천왕봉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운의 꽃비가 내리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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