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갑 지리산 여행기 17함양의 전설적인 선거 전문가 건빵 두 봉지로 민심 얻게 된 사연 <로마인 이야기> 작가 시오노 나나미도 깜짝 놀랄 군수 재직시 함양서 한 일 바로 이것!차기 군수에게 전하는 말 “난개발은 정말 곤란해!”아내 홍순명 여사의 맛 비결 전격공개영화 <웰컴 투 동막골> 저리가라 정연섭 교육감님 선 수련 나가신다 # K형. 저는 지금 햇살 쏟아지는 함양초등학교 교정에 와 있습니다. 고개 들어 가을 하늘 바라보니 참. 맑고 싱그럽습니다. 교정 뜨락엔 천년 묵은 느티나무. 서예가 월정(月停) 선생 시비가 있는데요. 시비엔 초서체로 묵가필무(墨歌筆舞)라. “명상은 나래를 펴고 맑은 묵향 속에 양호장봉 다듬어져 붓 잡은 손끝에 힘이 실리면 지필묵연 하나 되고 나도 거기 어우러져 무가필무(舞歌筆舞) 묵가필무(墨歌筆舞)” 풍류 어린 시 한 수가 새겨져 있습니다.저는 자리를 옮겨 영화 <포레스트 검프> 주인공 톰 행크스처럼 교정 벤치에 다소곳 앉아 고운로 지나가는 사람 1. 2. 3 모습 구경하고 있습니다. 여름은 벌써 지나갔건만. 필름 밀짚모자 쓰고 가는 리어카 노인. 미래 장한나 꿈꾸는 함양여고생. 바이올린 매고 사뿐사뿐 걸어가네요. 한적한 시골풍경이 참 보기 좋습니다. 저는 벤치에 앉아 이런 다짐을 해봅니다. K형도 아시다시피 1980년 초 뿌리깊은 나무 기자들이 쓴 <숨어 사는 외톨배기>라는 책이 있었잖습니까? 고도원(아침편지 운영자. 전 청와대 연설작성 비서관) 등 기자들이 썼지요. 집필진들은 전국 방방곡곡 이름 없는 농사꾼. 시장통 장사치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취재. 이를 문장화했지요.저도 고도원 기자처럼 함양 한 모퉁이 필부들이 살아가는 모습. 담담하게 조명해 보고 싶습니다. # 주간함양 편집실 서가에 함양 관련 책들이 즐비합니다.<함양 농업이 살길>. 재경 함양향우회 편저 <함양>. <황석산성 관련도서> 등. 이들 책들 옆에 함양교육청에서 펴낸 영인본 <함양 교육사>가 있네요. 1995년 4월 발행. 제가 쑥 이 책을 집었습니다.왜 하필이면 이 책을 집었느냐구요? 저는 진작부터 함양판 <책상서랍 속의 동화> 풍의 글을 한번 써보겠노라 마음먹었습니다. <책상서랍 속의 동화>란 장예모 감독이 만든 영화인데 중국 아주 낙후된 산골마을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감동사연이 주요 줄거리랍니다. 어디. 중국에만 그런 사연이 있으랴. 함양에서도 그보다 감동 어린 드라마 존재할 거다 싶어. 그 소재를 찾기 위해 이 책을 집어든 겁니다.책속을 펼치니 함양 교육계 이모저모. 나아갈 방향 교육지표 등이 기술되어 있네요. 함양 군내 1950년대 빛바랜 학교 사진도 실려 있습니다. 그 사진들을 보니 김주영 성장소설 <홍어>.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가 생각납니다.화보 페이지에 그 당시 함양 교육계를 이끈 선각자 얼굴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초대 교육감 정연섭. 2대 조병일. 3대 김용택. 4대 양채용. 초대(1952년부터 1953년까지) 정연섭 (鄭演燮) 교육감 카이젤 수염이 인상적입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정 교육감은 휘문고보를 나왔고. 소설가 월탄 박종화 선생과 동문 사이더군요. 당시로서는 상당한 인테리였습니다.정 교육감은 1952년부터 1953년까지 함양 교육계를 책임지셨는데. 이때가 글쎄 어느 때인가요? 한국동란 중 아닙니까? 소설가 이병주 소설 <지리산>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듯이 함양은 파르티잔 주요 활동처로 악명 높았죠. 지리산 여자 빨치산 정순덕은 용추계곡 천궁산장 뒤편에 숨어살다 생포되었지요. 빨치산과 국방군간의 전쟁이 밤낮없이 치러졌던 곳이 함양이지요. 이러한 혼란상황 속에서 정 교육감은 어린 학생들에게 원불교 사상과 참된 교육을 주입시켰다 합니다. 원불교 교리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 무시선 무처선(無時禪 無處禪). 동정일여(動靜一如) 영육쌍전(靈肉雙全).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佛法是生活 生活是佛法). 이사병행(理事竝行) 등 이지요.이들 중. 처처불상 사사불공만 소개하면 “이 세상 곳곳에 부처님이 계시니. 하는 일마다 불공의 정신으로 하자는 뜻입니다. 처처불상은 신앙의 자세로서 이 세상 만물이 다 부처의 화신이라는 것이라는 거지요. 사람뿐만 아니라 물건까지도 다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주만유는 다 진리불이요 부처의 화신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처처불상의 신앙은 인생으로서 가장 경건하고 엄숙한 생활자세요. 항상 부처를 모시고 사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사사불공의 수행은 인생으로서 가장 성실하고 부지런한 생활자세이지요 (下略)”저는 윗글 마지막 부분 “가장 성실하고 부지런한“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앗싸리판 전쟁통에. 정연섭 교육감께서는 학생들에게 선한 마음과 부지런한 생활태도를 겸비해라 훈육하셨던 겁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이 생각나네요. 동막골 경우 전쟁 중 대포 속에 옥수수 집어넣어 팝콘 만들어 먹었다면 정 교육감님께서는 동란 중. 학생들에서 참선 수련 지도하셨네요?어린이들에게 무한경쟁을 유발시키는 요즘 선생님 상(像)과는 전혀 판이하죠?"제 할아버지께서 평생 공부하다 맛본 '서권기 문자향' 함양군민 여러분께 드리옵니다" 조선조 최고 학자 송시열 선생 공부했던 책함양 군민에게 바친다# 특히 제가 정연섭 교육감을 주목하는 것은 그 분이 행한. 남다른 고향사랑입니다. 선생. 살아생전. 아들 정용규(전 함양군수. 현재 농부)에게 이런 당부를 합니다. “선대 어른(鄭友民=정용규 전군수 할아버지)께서 애지중지 모았던 고서들 꼭 공공기관에 기증토록 해라. 너희들 세대 사람들은 신학문을 한터라 할아버님 애장서가 필요하지 않으리라. 할아버지 애장서 값어치를 아는 학도들이 접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도록 하거라”정용규 전 군수는 부친의 뜻 받들어. 할아버지 수천권 애장서를 원불교 본당.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그리고 이번 참에 (7월 13일) 함양문화원에 기증하게 됩니다. 함양 문화원에 기증한 도서목록을 입수해 보니까 실로 진귀한 고서들입디다. 기증 고서는 김일손(1464~1498) 선생의 󰡐탁영집󰡑강익(1523~1567)선생의 󰡐개암집󰡑 박명부(1571~1639)선생의 󰡐지족당집󰡑하재구(1832~1911) 선생의 󰡐위수집󰡑 등 총 182권이더군요. 정용규 전군수가 기증한 고서(古書) 전부 희귀하고 소중한 것이지만 특히 제 시선을 사로 잡은 고서는 김일손의 <탁영집>이었습니다. 김일손은 정치인이기 전에 뛰어난 예술평론가. 문장가로 이름이 높습니다. 이종준(李宗準. ?~1499) 그림 <매죽도(梅竹圖)> 8폭을 보고 다음과 같은 글을 썼지요.“나는 서화를 잘 모른다. 그래도 정신으로 그 오묘함과 회통할 수 있다. 서화와 시문은 모두 흉중에서 나온 것이다. 가슴속에 아무 것도 없다면 어찌 그 화미함을 나타낼 수 있겠는가. 눈에 덮여 휘늘어진 가지. 달빛이 전하는 향기와 그림자. 바람에 드높아진 잎과 꽃술. 안개에 감추어진 색의 농염함을 보면. 고요하고 쇄락하고 상쾌하고 소담함에 이른다. 붓 하나의 조화로 두드러지게 드러내고 정묘하게 나타내니. 호방하고 빼어남이 넘쳐 창생의 뜻에 도달한다. 8폭 그림 가운데 앉아 있으니 나도 모르게 중균(이종준)의 흉중으로 들어가게 된다.”이처럼 주옥같은 글이 <탁영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K형은 김해 김씨로서 김일손 어른 직계 후손임을 늘 자랑했지요. 지난 8월 여름 K형. 수동면 우명리 청계서원에 들렀잖아요? 형은 그때. 김일손 어른 위폐와 서원 대청 위에 써놓은 편액과 시문을 유심히 지켜보며 선조를 기리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이번엔 집안 김일손 어르신이 쓴 <탁영집>을 통해 선조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K형. 조선말. 함양 산골서 서울까지는 가려면 아마 30일 정도 안 걸렸겠습니까? 그렇게 먼 거리인데. 어떻게 이 많은 고서들을 수집. 서권기 문자향(書卷氣 文字香)을 즐겼을까요?#책을 기증한 정용규 전군수에게 그 연유를 알아보고자 인터뷰를 요청하자 일언지하에 “아무 것도 아잉거 가지고 와 그리 호들갑이고. 그냥 마 살고 있는 집이 낡아가고 새로 집을 지어야 하는데. 새 집에 책 보관할 장소도 없고 방치해두면 곰팡이도 끼고 그래서 기증항거라. 문화원에서 잘 간수해주먼 그걸로 되능기라. 그냥 고서 좋아하는 군민들이 잘 활용하몬 그기 최고잉거라”라고 말합니다. 이에 질세라 “그건 아니지요! 이 고서들을 어떻게 입수했으며 우찌. 그간 간수했는가 그런 이야기를 전해줘야 군민들이 고서의 중요함을 인지 안 하겠습니꺼” 제가 악다구니(?) 해대자. 허허 웃으며 그냥 차나 한잔 나누세. 해서 함양읍 백련리 정용규 전군수 댁을 찾았지요.어르신에게 이런 표현을 쓰면 좀 거시기하지만. 정용규 전군수는 사모님 내조 덕택인지 올해 연세 75세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참으로 동안이십니다. “기색이 선명하고 얼굴에 윤이 난 걸로 보니 장부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가 봅니다. 특별한 건강법이라도 있나요?”“그런가? 허참. 과히 듣기 싫지 안쿠만. 건강비결? 아침저녁 시간 있을 때마다 자전거를 안 타나. 그라고 해명(함양) 산천 공기가 워낙 좋아 웬만하몬 병이 안 생긴다 아이가. 게다가 내가 직접 농약 안주고 키운 농작물 묵으이. 세월이 흘러가도 안 늙네 그려. 뭐라꼬? 고서 관련 에피소드를 들려달라?그라이끼네. 그리먼 족보부터 이야기해야 순서가 맞겠네. 나는 초계(草溪) 정씨 후손인데. 시조묘가 합천군 쌍책면 옥전서원 뒤편에 있다네. 시조 배걸 어른은 고려 현종때 지금 국무총리급 문하시중을 지내셨고. 조부 존함은 우자 백성 민자이신데 뭐라하꼬 백두이싱기라. 요즘말로 백수? 워낙 고전을 좋아하셔서 한참 때는 고서 7000여권을 소장하셨다카데. 우찌 많은 고서를 소장했는가하몬 조부 친척 중에 이왕직(李王職: 망국 이후 일본 궁내청 직속으로 편제)에 근무한 분이 계싱기라. 그라몬 답이 나오제 그쟈?”정용규 전군수의 계속되는 말입니다. “우민 할아버지께서는 그 뭐시기냐. 기증 목록표에 나와 있듯이 송자(宋子=송시열)라든가 동춘당 송길준 등 조선 성리학 태두 저서를 마이(많이) 탐독하셨지. 고로 우민어른께서는 유학에 깊이 심취하셨다 이렇게 볼 수 있지. 올마나 책을 애지중지하셨는지 백전에다 서고까정 지었다아이가. 고서관리? 고서 보관하는데 있어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이 바로 습기와 공기잉기라. 보관함 속에 책을 넣어두야 하는데 삼나무나 노송나무 또는 대나무로 만든 나무상자를 썼지. 이 나무상자에 우선 새 종우(종이)를 깔고서 고서를 넣은 후 주변에 종우를 주먹 크기로서 동그랗게 뭉쳐 몇개 같이 넣어두곤 했다 아이가. 또 창포를 베어 그걸 응달에 말려 그 창포를 책갈피에 끼아 넣기도 하고. 이렇게 소중하게 간직했던 고서. 이제 문화원에서 잘 관리해주었으면 하네“이어. 부친 정연섭 어른에 대해 코멘트를 합니다.“내가 보기에도 부친께서는 참 유별난 삶을 사신기라. 부친은 원불교에 심취하셨는데. 그라니까 세상 물욕 이런데 별로 관심이 없슨기라. 그 영향을 받아 나도 그렇고. 아버님은 청년시절 불교공부한답시고 정주영 현대회장 고향 강원도 통천군 가는길. 고산군 석왕사(釋王寺)로 들어가 불목쟁이도 하셨다카이! 부친은 한마디로 도인처럼. 아니 도인이 되어 유유자적 한평생을 사셨던 분잉기라. 특히 선수련. 신선사상 연구에 심취하셨지. 그런 연유로 모든 게 무소유잉기라“무소유. 참 오랫만에 들어보는 말입니다. 무소유란 산스크리트 시마티가(simatiga)를 번역한 말로. 무소득(無所得)이라고도 하지요. 보통 일반용어로는 ‘가진 것이 없는 상태’를 뜻하나. 불교에서는 단순하게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번뇌의 범위를 넘어서 모든 것이 존재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무소유처(無所有處)라고 하면 삼매의 경지를 뜻한다지요. 이번 고서 기증 건(件)도 무소유 정신에 입각한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정용규 전군수 한숨 돌린 후 계속 말합니다.“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 나 역시 아부지 영향에서 못 벗어나 무소유 까정은 못되고 분수껏 사는 게 인생이라. 그리 생각하고 안 사나“ 정치판 잘못 발 딛어15년간 화전민 생활했소이다# 화제를 확 바꿔 질문해 봤습니다. - 부친의 도인 사상 영향을 받은 탓에 정치분야에 관심이 없을 듯 싶은데 어찌하여 군의원 선거. 군수 선거에 나섰나요? “그것참 그것 이야기하려면 내가 숨통이 막혀! 함양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제. 내 친척 중 노인환이라는 정객이 있응기라. 국회의원도 하셨지. 글쎄 이 양반이 선거 출마한다꼬 날 찾아와 선거운동 도와달라고 해. 그때 내가 함양서 선생할 때라. 친척인지라 거절할 수도 없고 해서 그래서 교편생활 접고 그 일에 뛰어들었는데. 하이고 그것참. 그 아수라장에 뛰어들어 나. 완전히 15년간 허업(虛業)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능기라. 우짜든동 내가 노인환 국회의원 당선하는데 일조했지“(우리나라 3대 정치 지략가가 있습니다. 엄창록. 백성남. 정용규. 엄창록은 김대중 전대통령 목포서 국회의원 출마했을 때 당시 여당 공화당 필승전략을 허무는데 일등공신으로 활약했죠. 백성남은 노태우 대통령후보 중간평가 공약을 수립했고요. 정용규 전군수는 건빵 두봉지 전법을 구사. 몰표 획득하는데 선수랍니다)▲ 산수식품 작업장 모습. 산수식품의 노하우는 통영 생멸치를 가마솥에 잘 끓여 농약 안 넣은 양념을 버무려. 이런 연유로 지존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허허 감빵(건빵)? 맞아 맞아. 감빵 두 봉지 포케토(호주머니)에 넣고 함양 끄트머리 서상서 또 다른 끄트머리 마천까지 도보하면서 이 집 저 집 유권자 찾아가 머리 조아리며 노인환 후보 한표 부탁합니다. 그래야 함양이 삽니더 선거운동 했던 시절이 있었지. 그런데 다음 선거 때. 5공 실세 권익현 의원이 민정당 산청 함양 지역구 공천받는 바람에 노 의원이 낙천되고 말았지. 그때부텀 나는 마. 백수건달로 전락하고 말았다네. 그때부터 딱! 15년간 백전 산골 중기부락으로 들어가 화전민 생활 안했나? 정치 땜에 고만. 막장 인생이 됭그라. 아이다! 덕분에 조화로운 삶을 배우게 되었으이 손해본 것 없다. 화전민 생활할 때 땅에 대한 경외심 많이 배운 기라”정용규 전군수는 화전민 생활을 하면서 이른바 스스로 땀을 흘러 척박한 땅을 일구고 그 땅에서 양식을 장만했습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제1대 지방자치 선거철이 되었다.“주위에서 하도 군의원에 출마 하라고 권유하는 바람에 등 떠밀려 억지로 출마하게 됭기라. 군의원 마치자 군수 출마하라고 하네? 엤다 모리겠다. 평상심으로 군수 노릇하몬 되겠지 그런 마음으로 출마했는데 덕커덕 되데?”-박근혜 의원처럼 선거의 제왕이시네요. 출마하면 무조건 당선 되시니? 비결이라도 있나요?“비결은 무신 비결. 그냥. 허허 이런 말 해도 되나. 음. 그라이케롱 곧 지자체 선거가 돌아오겠네. 출마하려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무릇 세상사가 그렇듯 선거때만 간사스럽게 유권자에게 환심 얻으라고 하지 말고 평소에 유권자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진정성이 있어야 되능거라? 그기 비결이라몬 비결아이가!”정용규 전군수에게 남자 박근혜라는 칭호 헌정하자 신이 나셨습니다. “그라고 허망스런 허풍스런 공약 내 세우지 말고. 허언도 하몬 못써. 오로지 자기가 해낼 수 있는 것만 진실된 공약만 해야 해. 나? 군수시절 아무 것도 한 게 없어. 내 (군수) 취임 일성이 뭔 줄 아오? 나는 마 관광개발 전문가가 아니다. 나는 농부들이 편하게 논에 가 농사지을 수 있도록 길 닦아주고 넓혀주는 데에만 신경 쓸 끼다 그랬지. 내가 군수하몬서 유일하게 한 게 있다면 농로 만들고 경지 정리한 거요. 관광객 유치하자고 흉측스런 콘크리트 건물 짓는 거? 그것보다 식량확보하는 기 최고 중요항거라. 이 정용규. 군수 노릇하몬서 논길 넓힌 것 밖에 없다카이. 사람이 시원찮아 그것 밖에 못했다 마”농로를 만든 게 왜 보잘 것 없는 건가요? 세계적인 역사저술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왜 중국과 로마는 국가규모의 대토목사업을 시작할 때. 한쪽은 방벽을 건설했고 또 한쪽은 가도를 건설했을까. 방벽은 사람의 왕래를 차단하지만. 가도는 사람의 왕래를 촉진한다”이 말에 비춰보면 정용규 전군수의 집요한 농로 건설. 의미 있는 일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농부의 논길 왕래를 촉진시켜 농토 기름지게 한. 위대한 업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한편 정용규 전군수는 재임시 함양 난개발을 결사반대했다 합니다. “함양 최첨단 레저화? 마구잡이 개발? 그것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닝기라. 이런 형국에서는 주민들이 우선 낭비벽이 심해지거든. 그라고 도시화가 되몬 격심한 빈부격차로 말미암아 심리적 스트레스. 시장창출. 수익증대. 자원남용 오폐수 남발 등이 쳐들어와 말이다. 시골 특유의 순박함. 정겨움 이런 기 확 사라지고 말끼라. 우짜든동 함양은 생태친화마을로 남아야 한다는 기. 내 주장이다! 함양 어디로 가나 지나는 행인 발걸음을 붙잡는 절경들 즐비 안 하나? 이 아름다운 풍경. 명문대가에서 고이 기른 규중처녀와 같은데. 난개발 해 버리면 그만 그 예쁜 처자 얼굴에 상채기를 주게 되는데 이 못난이 처자 보로. 어느 누가. 함양에 오겠나?“아내가 경영하는 산수식품 반찬들 없어서 못 팝니다!# 정용규 전군수는 요즘 농삿일에 몰두합니다. 납품처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아내 홍순명 여사는 함양이 자랑하는 식품 CEO(산수식품 대표)인데요. 바로 이곳에 전량 납품하는 겁니다. 사모님은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처녀시절 함양에 와 봉사단 활동을 하다 그만 정용규 총각에게 체포(?)되어 부부연을 맺게 되었다 합니다. 낭군님 인터뷰하는 걸 지켜보며 사모님. “도시 규수가 함양에 시집와 황소만 안 키웠지. 돼지 누에 돈나무 다 키운 억척 농군이 되고 말았다”고 너털웃음을 짓네요. 사모님은 정치유탄 맞은 신랑 때문에 산속에 가 화전민 생활을 한 이력이 있는데요. 그 곳에서 깻잎김치를 개발. 반찬 시장 본좌에 오르게 됩니다. 홍 여사는 백전 청정지역에서 생산된 깻잎 무말랭이 등을 주재료로 부각. 김치 등을 만들어 현재 전국 식객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홍순명 여사 맛 비결은 멸치 젓갈에 있습니다. 삼천포 통영서 사온 생멸치를 커다란 솥에 담아 장작불로 부글부글 끓인 뒤 거기서 나온 국물에 들깨. 마늘. 고춧가루 등 갖은 양념을 넣지요. 영양을 고려해 최근엔 채 썬 밤을 넣는 것도 빼놓지 않는답니다.한 뭉텅이를 양념장에 푹 담그지 않고 깻잎 하나하나마다 양념장을 바릅니다. 양념이 골고루 배도록 함이지요. 이렇게 정성을 들여야 좋은 음식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랍니다. 여기에다 지리산 정기까정 들어갔으니 우찌 약선음식이 아니겠습니까? 정용규 전군수님. 예전에는 건빵 전법으로 함양선거판을 좌지우지했다면 지금은 부창부수 전법으로 함양경제계를 리드하고 있네요. 참 보기가 좋습니다. 정용규 전군수가 제게 귀띔합니다. “마누라(홍순명 여사) 가 만든 제품들은 함양을 넘어 경남도의 자랑잉기라. 경남도는 명절대목을 노리기 위해 소문난 향토식품을 선발. 서울로 진출시키는데 꼭 산수식품을 꼭 이 팀에 합류시킨다 아이가”주요 출전선수 명단은 이렇습니다.창원 감익는 마을(김윤금). 진주 한마루 푸드(김필수). 사천 ABF 어성초영농법인 (안충기). 남해 형제제면(하희택). 하동(주) 한그루(박현정). 산청 친환경협회 (이용철). 합천 생약 가공영농조합법인(백문기) 함양산수식품(홍순명) 등 입니다.# 정용규 전군수와의 인터뷰는 보시다시피 그냥 환담하는 수준에서 끝났습니다. 고즈넉한 가을 저녁. 두 부부는 방금 인터뷰를 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르는 듯. 다시 일상 속으로 돌아가 공장 마당 청소할 채비를 차립니다. 저는 정용규 전군수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백련리 거주 또 한분의 함양 반찬 고수집에 들렀습니다. 이태상 친구 (마천석재 용달운전수) 어무이. 이 분은 매운 고추를 송 송 썰어 이걸 조선간장에 버무려 밑반찬을 만드는데 그 맛이 기가 막힙니다.언젠가 이태상 친구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햅쌀밥에 이 걸 푹 집어넣고 싹싹 비벼먹길래 저도 따라 해봤죠. 아! 한 공기 더 먹고 싶을 정도로 진미였습니다.제가 어무이에게 인사를 드리자 “말라꼬 왔노?”“어무이. 지난 여름 먹었던 그 매운 고추 간장조림 좀 있능교?”“지금 없다. 만들어야 한다. 와 그라는데?”“서울 사는 내 선배(K형)한테 좀 붙여줄라고예”“그래? 내일 다시 온나? 내가 만들어 놓으쿠마”“예. 알겠심더. 그럼 잘 부탁합니더”K형. 기대하시고 고대하시고 파마하세요. 3일후 형님 앞으로 산수식품 깻잎 김치캉 이태상 어무이 고추간장조림 상납 들어갑니다. 이 반찬 드시고 형수님 마. 샹강(香港) 확 보내 버리세요!구본갑 본지칼럼니스트busan7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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