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률 함양제일교회 목사가을이다. 거실 정돈을 하면서 목양실에 있던 오디오를 거실로 옮겨놓았다. 오래 전에 꽤 거금을 들여서 구입했던 것인데 소리가 쓸만하다. 밤늦게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목양실을 방문한 분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때 좋은 벗이 되어 주었다. 목양실에 두고 이따금 듣기에는 오디오가 아깝고 계절이 하도 좋아서 거실로 옮겨놓고 가족과 함께 매일 음악을 듣기로 한 것이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뉴스를 보느라고 텔레비전을 틀었었는데 오늘은 오디오를 틀었다. 홍순관 님의 앨범 “나처럼 사는 건 나 밖에 없지”를 올려놓으니 그 특유의 맑으면서도 깊고 낮은 저음이 집안에 잔잔히 흐른다. 아침잠이 없는 셋째가 노랫소리에 잠이 깨어 내 곁에 오더니 “저 분도 가수예요?”하고 묻는다. 아이가 그렇게 묻는 이유가 짐작이 가서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없어서 그러지?”하고 되물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인 셋째는 요즘 원드걸스. 소녀시대 같은 아이돌 그룹에 필이 꽂혀서 거울 앞에서 ‘지지지지’하면서 춤이 한창이다. “꼭 텔레비전에 나와야만 가수인 것은 아니야.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훌륭한 가수들이 많단다” 아이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가수 홍순관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해줬다. 나는 그의 그윽한 목소리와 자연과 생명. 평화를 노래하는 그의 노랫말을 무척 사랑한다. 그러나 텔레비전에서 그를 만날 수 없으니 딸 아이는 가수로서의 그의 존재를 의심할 수밖에. 텔레비전이라는 사각의 틀은 이렇게 우리의 의식에 자리를 잡고 우리의 판단을 재단한다. 그 틀에 들어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사람과 물건과 일의 가치가 하늘과 땅 차이로 갈라지니 참 무서운 틀이다. 틀은 우리의 의식을 재단하고 그 틀에 따라서 사람과 일에 대하여 좋고 나쁨. 옳고 그름. 수용과 거부. 환대와 냉대를 결정한다. 그러면서 사람을 잃고 일이 어그러지고 세상이 갈기갈기 찢겨가니 안타까운 일이다. 자연은 그렇지 않다. 비가 착한 사람의 밭과 악한 사람의 밭을 가려가며 내리는 것을 봤는가? 해가 선한 사람의 머리에만 내리쬐는가? 나무들은 제 잎을 떨구어 제 뿌리만 덮지 않고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려서 서로의 뿌리를 따듯하게 덮어주며 함께 겨울을 이겨낸다. 우리 마음에 그런 세계가 열리면 얼마나 좋을까. 가을이 깊어가니 하늘이 더없이 높고 푸르다. 하나님은 그 광활한 하늘을 어디 하나 꿰맨 곳 없이 반듯하게 우리 위에 펼쳐주시니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 사람들이 벽을 쌓고 높이 세워 올린 건물들 때문에 하늘이 여러 갈래 조각나 보일 뿐이지 산에 올라 본래 하늘을 보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온통 한 덩어리다. 우리 마음도 본래 마음은 그럴 것이다. 이 사람 저 사람 너무 가리지 말고. 이쪽저쪽 너무 구별짓지 말고 다 품어보자.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디모데전서 4:4)고 한다. 다 품으려는 마음으로 준비되자. 가을이 되니 밖으로만 내뿜던 만물의 기운이 안으로 잦아들기 시작한다. 고요히 눈을 감고 내면을 들여다 볼 때다. 깊이 들여다보면 내 안에 자리를 튼 틀이 보일 것이다. 그 틀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면 세상을 좀 더 온전하게 볼 수 있고 여유를 갖고 사람과 일을 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에 깃든 고요함과 평화가 우리 마음과 이 땅에도 깃들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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