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률 함양제일교회목사나는 함양이 좋다. 상림 약수터에서 물 한잔 하고 고개를 들면 오도재 너머로 천왕봉이 보인다. 전국 어디를 다녀봐도 지리산의 수련한 풍광을 배경으로 단아하게 자리잡은 함양만한 곳을 만나기 어렵다. 장인 장모님께서 함양을 몇 번 다녀가시더니 지난 가을에 아예 내곡마을로 이사를 오셨다. 함양이 좋은 이유가 또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팔령고개를 넘으면 산내. 인월. 남원이 나오면서 금방 전라도 땅이 펼쳐진다.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서인지 우리교회는 양쪽에서 서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은 분들과 전라도에서 오신 분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지역을 따지며 살지 않는다. 숱한 세월 동안 조국을 양분시켜 왔던 지역주의가 우리교회에서만큼은 힘을 떨치지 못하니 얼마나 좋은가.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는 읍내의 경계선에 위치해 있다. 고개를 넘으면 읍내고 고개를 돌리면 두산마을. 평촌마을이 가까이 보인다. 교인들도 어떤 이는 읍내에서. 어떤 이는 마을에서 산다. 교인들을 방문하다보면 사무실에도 가고 논밭과 과수원에도 가고. 아파트에도 가고 손수 온돌을 놓아 만든 정감어린 흙집으로 갈 때도 있다. 이렇게 도시와 농촌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다보니 이제는 나도 교회주변에 자그만 텃밭을 일구어 푸성귀 심고 거두는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다. 나는 몇몇 시민단체들을 통해서 지역활동을 하고 있다. 단체의 회원들은 다양한 종교를 가지고 있고 그 종교의 지도자들도 있다. 함께 일을 하자니 함께 밥을 먹을 기회가 많다. 같은 밥을 놓고 나는 머리 숙여 기도를 하고. 어떤 분은 성호를 긋고. 어떤 분은 두손 모아 합장을 한다. 밥이 황송해서 감당을 못할 지경이다. 그렇지만 밥을 먹으며 나누는 마음은 다 하나다. 환경을 보전하고 지역을 건강한 공동체로 살려보자는 것이다. 어릴 때 동네 뒷산에서 놀다가 해질녘에 집으로 돌아올 때면 동네 어귀에 있던 사찰 앞을 지나면서 쏜살같이 뛰어가곤 했다. 나면서부터 교회에서 자란 나로서는 절이 낯설고 무섭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종교의 경계를 넘어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막연한 이질감과 경계심이 사라졌다. 경계에 서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살아갈 필요가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지만 자기세계만 고집하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는 문명충돌로 인한 갈등이 살육과 분쟁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는 현실을 세계 도처에서 목격하고 있다. 그 분쟁의 바탕을 들여다보면 국가패권주의. 인종주의. 문화와 종교의 배타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자기들의 세계만을 고집하며 그 배타적인 이데올로기를 다음세대로 확대 재생산해 나가면서 세계는 평화를 잃고 얼마나 갈기갈기 찢겨져 가고 있는가. 거창하게 세계를 논할 것 없다. 경계에 서서 경계를 넘나드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각 개인의 삶도 한없이 빈약하고 불행해진다. 나는 딸 둘. 아들 하나를 두고 있는데 한 아이는 사춘기의 절정을 겪었고 한 아이는 사춘기를 한창 지나고 있다. 아이들의 주장이 강해지면서 부모로서의 고집과 고정관념을 내려놓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부모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들도 더러 있지만 아이들과 생각을 나누며 일치점을 찾아가고 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를 내려놓고 아이들을 만나가는 여정을 통해 나는 인생을 보다 깊고 풍부하게 경험하고 있다. 경계에 서서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를 경계선에 세워놓고 경계를 넘나들면서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부단히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을 잃지 않고. 일을 잃지 않고. 다채롭고 풍부한 인생을 잃지 않는다. 고집대로 살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된다. 사람은 별과 별의 경계를 건너 우주선을 쏘아 올리면서도 한뼘 거리에 있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 하나 건너지 못해서 세상이 이 난리다. 힘들어도 각자 삶의 경계에 서서 경계를 넘나드는 연습을 하자. 마음이 굳어지려고 할 때 내 마음을 일깨우는 시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움직일 때마다 떨고 있다/ 바늘 끝이 미세하게 떨고 있는 한/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떨고 있는 사람은 진실하다/ 떨고 있는 사람의 말은 믿어도 된다/ 두려움으로. 경외심으로 떨고 있는 목사의 말은/ 떨고 있는 정치가의 말은 믿을만하다... 바늘 끝이 떨림을 그치고 고정되는 날/ 나침반은 이미 죽은 것이다.”(정학진. “나침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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