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추억과 함께 2023년 계묘년 설날이 왔습니다. 제게는 설날하면 가슴 설레던 추억과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설날 소식은 마을 입구에 멍석을 깔고 자리 잡은 뻥튀기 장수가 먼저 전하였습니다. 보기에도 투박하고 무거운 무쇠 용기를 힘에 버겁게 돌리는 모습은 왠지 서글퍼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부엌에서는 할머니께서 가마솥에 고구마를 잔뜩 넣고 물을 흥건히 부은 후 아궁이 속 장작개비 불을 지폈습니다. 고구마가 익으면 꺼내어 모시 헝겊에 싸서 마지막 한 방울이 떨어질 때까지 꼭꼭 짜셨습니다. 그때부터 주걱으로 저어가며 불길을 조절하면 처음 노란색 물이 시꺼멓게 변하여 꿀처럼 찐득한 조청이 되었습니다. 설탕물보다는 덜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단것을 실컷 먹을 절호의 찬스를 그냥 넘길 수는 없었습니다. 먹을수록 더 당기는 단맛 잔치는 달여서 배가 아플 때까지 계속됩니다. 할머니께서는 그렇게 만드신 조청으로 설 전날마다 콩 유과를 만드셨습니다. 아랫집 할머니 댁에는 입에 살살 녹는 은빛 찬란한 찹쌀 유과를 만드셨는데, 우리 할머니는 꼭 콩 유과를 만드셨습니다. 우리 집도 찹쌀 유과를 만들었으면 하는 게 어릴 적 버킷 리스트의 하나였습니다. 이제 콩 유과는 구경하기 힘듭니다. 생긴 것도 누렇게 투박하고 단맛도 덜하지만 그래서 더 그립습니다. 바스락바스락 씹히는 소리도 경쾌하고, 우리 콩, 우리 고구마로 집에서 직접 만든 콩 유과는 맛도 건강도 정성도 최고였습니다. 고향 함양 선배님, 후배님, 친구들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즐거운 설날 되십시오. 건승하시고 보람이 가득한 새해 만들어 가시길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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