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첫째주, 방방곡곡 진솔한 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체험 함양 삶의 현장`을 연재한다. <주간함양> 곽영군 기자가 함양의 치열한 노동 현장 속으로 들어가 체험하면서 직업에 대한 정보와 함께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흥미롭게 전하는 연재 코너이다. 관련 영상은 유튜브 `함양방송`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편집자 주>   새하얀 눈꽃송이가 함양 전역에 소복하게 내려앉았다. 시선을 두는 곳마다 하얗게 내린 눈들은 겨울 추위를 감싼 듯 포근해 보인다. 하지만 체감온도는 영하로 뚝 떨어지고 차디찬 아침 바람을 뚫고 직장인들이 출근길에 오른다. 눈 오는 아침, 함양읍 거리는 내 집 앞 눈을 쓸고 있는 사람들부터 인도에 비질을 하며 눈을 치우는 공무원들까지 합세하여 분주하다. 이번에는 ‘체험 함양 삶의 현장’을 위해 도로관리원을 찾았다. 도로 안전을 위해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는 도로관리원, 요즘처럼 눈이 많이 내리는 날씨에는 새벽부터 눈과 사투를 벌여야 한다. 군민의 안전을 위해 아무도 밟지 않는 눈길을 달리는 도로관리원, 그들의 삶을 조명했다. 올 겨울 들어 가장 혹독한 날씨를 기록했던 12월23일 새벽, 홀로 불을 밝히고 있는 이곳이 도로관리원들이 근무하는 장소다. 현장에는 제설작업에 사용할 염화칼슘 포대가 높게 쌓여있고 밖에는 도로에 쌓인 눈을 정리하는 1톤, 15톤 트럭이 대기 중이다. 함양군 전역의 도로를 책임지는 도로관리원들이 제설작업에 나서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트럭에 염화칼슘을 채우는 동안 작은 불씨에 잠깐 기대 몸을 녹인다. 이날은 경남에서 보기 드문 폭설이 쏟아졌다. 함양도 밤새도록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눈발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아직 새벽시간대, 시야 확보도 어려운 상황임에도 도로관리원들은 어둠속을 헤치며 하나둘 각자의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함께 동행을 하게 된 도로관리원은 강선영씨. 스스로를 말주변이 없다며 걱정하지만 올해 경력 10년차 베테랑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런 악천후 속에서의 취재가 처음인지라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던 그때, 강선영씨의 숙련된 기계 조작 덕분에 안심이 됐다. 제설현장은 마천면으로 넘어가는 오도재와 지안재 두 곳이다. 모두 경사도 높고 급커브 구간이 많아 특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구역이다. 함양읍에서 오도재까지 거리는 11km 남짓. 평소 날씨라면 일반차량으로 20분 내외면 충분히 도착하는 거리다. 하지만 눈에 가로막혀 1시간은 족히 걸렸다. 자동차 기어 1단 최저속도로 천천히 눈길 사이를 가르며 지안재에 올랐다. 눈길을 운전할 땐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고 이동하는 게 중요한 포인트. 한번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통제가 불가능해 강선영씨도 이 구간에서 만큼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강선영씨는 “눈이 오면 되도록 운전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운전을 해야 한다면 주행할 때 최대한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야 한다. 만약 자동차가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브레이크를 한 번에 깊게 밟지 말고 연달아 빠르게 밟아야한다”며 눈길운전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었다. 목적지 인근에 접어들자 눈발의 강도가 심상찮다. 고요한 도로 위를 조심스레 달리는 자동차와 달리 쉼 없이 움직이는 와이퍼가 거세진 눈발과 전쟁을 치르는 듯 하다. 제설작업은 크게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먼저 비교적 가벼운 1톤 트럭이 선두로 길을 열고 그 다음 15톤 트럭이 뒤를 따른다. 경우에 따라 눈발이 심하게 날리는 경우 1톤 트럭이 두 번 왕복하여 길을 만든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다. 육안으로 어림잡아 쌓인 눈의 높이는 10cm 이상. 제아무리 개조된 제설 트럭일지라도 눈을 밀어내는 장치로 부착된 제설눈삽을 제외하면 일반차량과 다를 게 없다. 그렇기에 더욱더 안전, 안전에 각별히 유의해야했다. 언덕을 지나 중간쯤 선명하게 찍힌 자동차 바퀴자국이 보였다. 분명 우리 팀이 선투였을 터인데 누군가 먼저 산을 올랐다. 요란하게 남겨진 바퀴자국은 중간쯤 자취를 감췄다. 강선영씨는 “사람들이 궁금해서 가끔 찾아오는 경우가 더러 있다. 바퀴자국이 많이 꺾인 것으로 보아 중간에 포기하고 다시 내라간 것 같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행동이다”고 경고했다. 오로지 자동차 라이트 불빛에 몸을 맡긴 채 산을 오르는 이 시간 여럿이 아닌 혼자라면 괜스레 무서울 법하다. 바퀴에 짓눌리는 눈 소리와 가시거리 3m도 되지 않는 깜깜한 도로는 더욱 을씨년스럽다. 강선영씨는 “딱히 무섭다고 느껴진 적은 없다. 오히려 저는 고요한 새벽 멋진 광경을 눈으로 담고 있어 감격스럽다. 야심한 새벽 산에 내린 눈을 볼 때면 아름답고 고귀함까지 느낀다”고 말한다. 차량으로 이동하는 중에도 시시각각 본부에 상황을 알린다. 작업의 효율성과 현재 위치를 알리며 최적의 동선을 맞추기 위함이다. 1톤 트럭은 염화칼슘 보유량이 많지 않아 주로 길을 여는 목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구역에 우선 염화칼슘을 살포한다. 눈이 많이 쌓인 경사 구간에는 15톤 트럭이 오르지 못해 소통이 굉장히 중요하다. 잠깐 평지에 트럭을 정차하고 보고를 위해 현장 사진을 찍었다. 쌓인 눈 속으로 직접 들어가 높이를 확인하니 발목 위까지 눈이 덮였다. 최종 구역까지 1차 제설을 마무리 한 후 하산하려는데 눈 덮인 도로에 사람 발자국이 찍혀있다. 지금 날씨와 시간대를 생각하면 의문스런 발자국이다. 강선영씨는 “여기 매일 산책하시는 분들 중 한분일 것 같다. 강아지를 데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등산을 하신다”고 말했다. 정말이지 얼마가지 않은 지점에서 한분이 뒷짐을 지고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며 산을 오르고 있다. 복장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태연하게 산행 중인 그는 지리산 엄홍길이 따로 없었다. 전체 함양군 도로관리원은 14명이다. 이날은 4명이 코로나19 확진을 받아 10명이 근무를 했다. 오늘 같은 날은 비상상황, 3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종일 도로 위를 달려야 한다. 잠을 잘 시간도 부족하다. 제설작업뿐만 아니라 도로 전반의 관리를 맡고 있는 관리원들은 문제가 발생하거나 위급·긴급상황이 생기면 언제든 출동이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면 쪽잠을 자기 일쑤다. 대부분 도로관리원들은 끼니도 거른 채 차 안에서 김밥 몇 조각으로 허기를 채워야 하는 경우도 있다. 중점적으로 제설하는 구간은 오도재, 팔령재 등과 같은 경사가 높은 지역과 버스 노선 구간이다. 강선영씨는 빙판길에 임시방편으로 흙을 뿌리는 것에 대해 “흙과 모래를 눈 위에 뿌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행위는 미끄러움을 더 가중 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도로가 가장 미끄러운 시간대는 해가 뜨기 직전이므로 출근길에 각별히 조심하여 안전운전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군민이 잠든 시간 누군가는 눈과 치열한 사투를 벌였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들의 수고로움이 군민들의 안전한 아침을 책임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제설현장에서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도로관리원들이 있어 겨울철 함양군 도로는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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