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나무를 참 많이 심었습니다. 지난 가을 축대공사를 하고 넓어진 마당에 새롭게 정원을 만들며 매화, 벚꽃, 해당화, 무화과, 등수국, 능소화 등등 다양한 나무를 심고 특별히 장미를 많이 심었습니다. 새로 만든 돌담과 펜스를 장미로 장식하려고 계획을 세우고는 독일, 프랑스, 일본 덩굴장미와 관목 장미를 스무 그루 정도 심고 나서 이제 됐다 싶었는데 그동안 몰랐던 영국 장미를 뒤늦게 알게 되었답니다. 심을만한 자리에는 다 심고 나서 말입니다. 장미 스무 그루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기에 아내는 장미만 너무 많이 심는다고 불만이었습니다. 관리도 다 못할 거면서 왜 그리 많이 심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다 맞는 말이니까요. 장미는 꽃이 예쁘기는 하지만 병충해가 심해서 키우기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화려하고 향기로운 장미일수록 가시도 만만찮지요. 뒤 늦게 알게 된 데이비스 오스틴 사로 대표되는 영국 장미는 여태까지 알고 있던 독일, 프랑스, 일본 장미보다 훨씬 더 멋져보였습니다. 실제로 장미 마니아들은 오스틴 장미에 찬사를 보내고 열광하고 있습니다. 워낙 인기가 많아 구하기도 어렵습니다. 명품 마니아들이 인기 있는 가죽 제품을 사기 위해 백화점 오픈 시간에 맞춰 달리듯 명품 장미를 사기 위한 온라인 구매 경쟁이 정말 치열합니다. 인기 있는 장미는 판매 개시 5초 만에 품절이 되어버리는데 이 치열한 구매 경쟁에서 세 차례에 걸쳐 손(가락) 빠른 아들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힘겹게 6그루를 구입했습니다. 장미는 이제 그만 심자는 아내의 눈치를 보면서 말입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어렵게 구입한 영국 오스틴 장미가 이제 제법 뿌리를 내리고 첫 꽃들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덩굴장미 세 그루, 관목 장미 세 그루가 꽃을 몇송이씩 피우는데 아내의 눈에는 이 여섯 그루 장미가 똑 같아 보이나 봅니다. “꽃을 보니 그 장미가 그 장미구만... 이제 제발 그만 쫌...” 내 눈에는 색깔도 화형도 완전히 다른 꽃인데 말입니다. 영국 음악가의 이름을 딴 벤자민 브리턴이라는 빨간 덩굴장미를 더 구해야하는데 말입니다. 내가 장미를 사랑하듯 아내도 한 때 옷을 많이 샀는데 그 때 내 눈에는 그 옷들이 다 비슷비슷해보였습니다. “그런 옷 지난봄에 백화점에서 사지 않았나?” “그 옷이 그 옷이구만~”하면 아내는 이번 거는 색깔이 조금 다른 거야~ (그렇게 색감이 없어? 차암~), 기장이 조금 짧은 거야~ (그렇게 보는 눈이 없어? 정말~), 등등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이유를 대었고 나는 감각이 없는 남편이 되었습니다. 새 옷을 사 놓고도 대부분 잘 입는 것 같지도 않아 물어보면 합당한 이유가 다 있었답니다. 살 때는 몰랐는데 입어보니 옷이 좀 벌렁거리는 느낌이 든다든지, 누가 같은 옷을 입는 것을 보았다던 지, 핏이 안 맞아서 못 입는다던 지. 관심을 가지고 보면 그 장미가 그 장미가 아니듯 관심을 가지고 보면 그 옷이 그 옷이 아닌데 그 때는 그 옷들이 그렇게 보였습니다. 처지가 바뀌고 보니 그게 이제야 생각이 나는 겁니다. 흰색 바지에 어울리는 구두, 검정 바지에 핏이 맞는 블라우스, 꽃무늬 원피스에 맞는 핸드백... 이 모든 것이 다 한 때 관심이고 사랑이고 열정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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