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읽기’는 2주에 한 번씩 흥미로운 과학적 주제들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와 자연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세상사들에 관해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과학자의 관점으로 들여다보고 문제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글들로 독자 여러분들을 만난다.유상균 박사는 주로 대안대학에서 강의하며 앎을 위한 과학보다는 삶을 위한 과학을 모색하고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물리학자로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 취득, 서남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사퇴하고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방문연구원으로 3년간 활동했다. 2005년 녹색대학교 전임교수로 합류하며 함양으로 귀촌했으며 현재 온배움터(구 녹색대학교), 지식순환협동조합(지순협) 대안대학, 서울시립대학교에서 물질 생명 우주, 생명과 인간의 진화, 협동조합의 역사, 과학의 민중사, 인문사회계를 위한 물리 등을 강의한다. 저서 ‘시민의 물리학’, 논문 SCI 국제학술지에 20여편 발표. 찰스 다윈은 1859년 인류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생각 중 하나를 세상에 내어놓았다.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서 밀려난 이후, 적어도 인간만은 가장 중요한 조물주의 피조물이라는 믿음마저도 무너뜨리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생명의 진화에 대한 이론으로 『종의 기원』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사실 진화론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은 다윈이 아니다. 그가 제시한 것은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과학적 원리였으며, 그 원리는 당시 성직자들을 분노케 할 뿐만 아니라 생물학자들 사이에서도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이었다.다윈의 생각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생명은 살아남을 수 있는 수 이상으로 번식하므로 생존경쟁이 불가피하다. 둘째, 부모의 형질은 자손에게 유전되며 변이가 발생한다. 셋째, 환경에 적응한 변이는 생존확률이 높아지고 새로운 종을 만들어낼 수 있다. 결국 진화는 목적이 없고 방향도 예측할 수 없는 과정이며, 인간도 수많은 진화의 나뭇가지 끄트머리에 매달린 종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당시의 과학기술로는 다윈이 이 대담한 제안을 검증할 수 없었다. 오히려 스펜서와 같은 철학자는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이라는 측면을 인류 사회에 적용한 사회다윈주의를 내세워 당시 열강들의 제국주의, 인종주의를 정당화하였다. 동시대의 위대한 계관시인 테니슨도 자연을 ‘피범벅이 된 이빨과 발톱’이라고 읊기도 했다.이후 20세기 들어 유전의 원리가 규명되고 소위 현대적 종합이라 불리는 진화생물학과 유전학의 결합을 통해 다윈의 진화론은 그 타당성이 입증되었다. 특히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의 성공으로 쏟아져 나온 분자 세계 분석 기술들이 본격적으로 생명물질에 적용되면서 ‘분자생물학’이라는 생물학의 혁명을 맞이하게 된다. 그 중요한 결과물이 왓슨과 크릭이 규명한 DNA의 이중나선구조일 것이다. 놀라운 과학적 발전 하에서 다윈 진화론은 더욱 분명해졌고 이젠 변할 수 없는 사실로 자리를 굳혔다. 그렇다면 테니슨이 탄식한대로 자연은 정말 생존경쟁으로 얼룩진 곳인가? 현대 과학은 다윈의 생각을 넘어 진화의 역사에서 일어난 중요한 전환들을 밝혀내기에 이르렀다. 생명을 관장하는 정보가 저장되고 전달되는 방식에 있어서 여러 차례 중요한 전환이 있었으며 그를 계기로 현재와 같은 엄청난 생명의 다양성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생명이 가져야 할 중요한 조건은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이다.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복제하는 분자들이 서로를 연결하면서 거대한 복합체를 형성하였으며 이 사건이 중요한 전환 중 첫 번째 사건이다. 또 처음에는 RNA가 정보의 저장과 실행 모두를 담당하였으나 DNA와 단백질이 등장하여 서로 역할을 나누게 되었다. 간단한 단세포 생물에서 여러 세포들이 공동체를 만들어 협력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다세포 생물로 진화함으로써 복잡하고 고등한 생물이 탄생할 수 있었다. 번식에 있어서도 단순히 자기 자신을 복제하는 무성생식만의 방식에서 성이 다른 배우자와 협력하는 유성생식이 등장하면서 생존확률을 높였고 다양성이 크게 증가했다. 그리고 나 홀로 개체들의 세상에서 군집을 이루는 사회적 개체들이 등장했다.이 모든 중요한 전환들의 공통점은 새로운 협력으로의 전환이다. 자연은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으로 얼룩진 모습처럼 보이지만 현대과학을 통해 밝혀진 진화의 핵심은 협력과 역할분담인 것이다. 진화의 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생물이 개미나 벌과 같은 사회성 곤충이란 점이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본질적인 모습을 밝히는 것이 과학의 존재이유다. 인간은 뛰어난 지능과 언어를 토대로 고도의 문명사회를 이루어내며 자연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는 협력이 아닌 무한경쟁사회로 치닫고 있고, 자연 역시 협력의 파트너가 아닌 자본축적의 도구로 대하면서 생태계를 파멸로 이끌어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생태계를 지속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망설임 없이 모든 생명들과의 협력과 역할분담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과학이 전하는 메시지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