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일까? 자꾸만 세상이 험악해져간다는 경험이 늘어만 간다. 그 누구에게 물어도 좋은 세상을 바라고 좋은 것이 주류가 되기를 꿈꾼다. 하지만 현실에선 항상 무언가 부족한 환경뿐이며 나 자신 외에는 좋은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런 나를 누가 좋은 사람이라고 해줄까? 요즘 여러 가지 상황들이 여러 사람들의 입에 욕을 달고 살게 하는 것 같다. 거리마다, 모여 있는 사람들마다 이러쿵저러쿵하며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푸념들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우리들 중에 그 누구도 험악한 세상을 일부러 만들려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각각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우후죽순처럼 나타나는 부조화들에 치여 이제는 어디에서부터 정리를 해야 할지를 모를 정도가 된 것 같아 안타까운 현실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을 해쳐나가야 하는 대표는 아마도 우리들보다는 더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을 것이 분명하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욕이라도 실컷 하면 좀 나아지려나? 하지만 청소년을 지도한다는 사람이 입 밖으로 욕은 할 수 없고 그저 속만 태우는 것만 같다. 아니 벌써 속으론 욕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중 오늘 읽은 성경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에서 또 다시 나를 다스리게 된다. 우리는 무슨 사건이 생기면 그 사건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주동자를 엄벌에 처하면 모든 것이 정리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법도 만들고 법을 지키고 실행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법을 만들고 시행하기에 앞서서 자신이 스스로 누구를 정죄하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을 주문하고 계신다. 우리가 아는 예수님은 죄 없는 분이시다. 그런 예수님도 죄인을 향하여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신다. 정의의 실현을 거부하시는 것인가? 아니다 더 크고 넓은 마음으로 그 사람을 용서하고 나 자신도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서로가 타인을 정죄하지 않는 사람들이 된다면 세상의 죄인들이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어떤이들은 그러면 더 어지러운 세상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에겐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양심이 있다. 그 양심은 항상 옳은 것을 말해주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 양심에 따라 행동 한다면 서로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세상은 더 좋아 질 것이 확실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정의의 실현을 위해 머리에 띠를 두르고 실력을 행사하며 정의를 실현해 왔다. 그러나 그러한 정의의 실현은 생각지 못한 부작용을 초래하게 되고 그것이 거듭 될수록 서로가 불신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되어 지금의 어지러운 상태가 되었고, 이보다 더 어지러운 형국을 만들어 내게 될 것이다. 이미 그러한 현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나도 누구든지 정죄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당장은 악한 사람들이 더 많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것은 경험해보지 않은 우려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세워주는, 정죄하지 않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앞장서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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