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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지리산 마실 여행기
병곡면 송평마을
바대 같이 깊고 넓어 무엇이든 1등 마을
유혜진 기자 / 입력 : 2019년 10월 28일(월) 13:29
병곡면 송평마을(2019년 10월 현재)
♧ 병곡면 송평리 소재
♧ 세대 97가구)
♧ 인구 174명(남 77, 여 97)
♧ 주요농·특산물 : 양파, 벼, 밤
♧ 이장 : 이문수


↑↑ 병곡면 송평마을.
ⓒ 주간함양
바대 같이 깊고 넓어 무엇이든 1등 마을


병곡면 소재지에 위치하고 있어 면사무소, 우체국, 농협 등이 모여 있는 병곡면의 중심마을이다. 단일 마을로 이루어져 마을 중앙으로는 제법 넓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옛 명칭은 큰 바다라는 뜻에서 바대라고 불리며 한자 지명은 해평이라고 했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송평으로 부르게 되었다.
↑↑ 송평마을 사람들.
ⓒ 주간함양
주민들은 이 마을이 아주 오래 전 바다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땅에는 바다의 모래사장처럼 고운 모래와 돌, 자갈이 많았으며, 마을 뒤쪽 괘관산에는 배를 묶었던 배고리 바위가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 마을회관 건립기념비
ⓒ 주간함양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으로 남원양씨와 단양우씨가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이어 고은 이지활의 손자인 조선 학자 송계 이지번이 이 마을로 들어와 대대로 살면서 성주이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이후 합천이씨, 김해김씨, 밀양박씨 등이 속속 들어오면서 큰 마을을 형성했다.
마을에는 조선전기 학자인 고은 이지활 선생, 한남군, 송계 이지번 선생의 위패를 모신 송호서원이 있다. 이 터에는 100년이 넘은 섭정지나무가 우거져 있다. 과거 당산제를 지내는 자리였으며, 여름날 주민들의 무더위를 식혀주는 쉼터 역할을 했다.

↑↑ 농번기에 함께하는 점심식사
ⓒ 주간함양
풀베기 대회 1등 마을

점심시간을 맞춰 찾아간 송평마을회관에는 50여명의 주민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이 날은 송평마을의 회치(회식)날이다. 마을 부녀회에서 농번기에 단체 식사를 준비해 온 마을사람들이 함께 점심을 먹는단다. 이날은 어르신들을 위해 오리고기와 죽으로 점심상을 차렸다. 마을 주민들은 오는 손님을 마다하지 않고 반겼다. 송평마을은 특별한 행사가 없어도 모임을 자주 갖는다고 한다.
특히 이날은 귀한 손님으로 면장님까지 초대했다. 송규영 면장은 “송평마을이 가장 단합도 잘되고 어르신들의 얼굴이 근심도 없고 환해 행복하다”고 전했다.
↑↑ 이문수 이장
ⓒ 주간함양
이어 마을에 대한 애착이 깊은 이문수(사진·67) 이장은 어르신들에게 마을 소식을 세세히 전했다. 이 이장은 “얼마 전 함양군 성인문해 골든벨에 참여해 우리 마을 어른이 실버상을 받았다”면서 축하의 박수를 요청했다. 이처럼 예부터 송평마을은 서로의 기쁨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등 단합이 잘 되는 마을이란다. 이상인(72) 씨는 자신이 이장을 했을 때 ‘공동퇴비 증산’을 목적으로 시행했던 풀베기 대회에서 송평마을이 늘 1등을 했다고 자랑했다. 그 당시 1등 상품으로 앉은뱅이저울을 받았다.

↑↑ 송평 여성 축구팀
ⓒ 주간함양
80년대 청년회 축구 열풍


송평마을 하면 축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1980년대 광복 이후 송평마을 청년회에서 주관하는 면민 축구대회가 해마다 성대하게 열렸다. 청년회(초대회장 이종현)의 주관으로 등구정에서 개최된 축구대회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병곡면민체육대회의 시초였다. 인구가 많을 때에는 송평마을에서 11명으로 구성된 축구팀이 2팀이나 출전했다. 연령대도 다양하고 여성 축구도 활성화되어 있었다. 송평마을은 총 7개반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면민 축구대회에 출전하기 전 반별 예선전도 치뤘다. 8월 초가 되면 이 대회를 위해 등구정 운동장에서 축구 연습을 많이 했다고 한다. 때문에 병곡면에서 축구로는 매번 우승을 거둔 마을이다.
당시 일화 중 하나를 이상인 전 이장이 전해 주었다. 이씨는 “그 때 아줌마들이 골키퍼를 했었는데 아주머니 쟁기(무릎)가 깨지는 바람에 치료비를 동네에서 물어 주기도 했다”고 했다.
↑↑ 송평마을 남성 축구팀
ⓒ 주간함양
이어 “송평마을 청년회는 체육대회의 경비가 많이 필요하니까 가을 나락도 베고, 모심기도 하고, 논을 매서 체육회 기금을 마련했었다”고 말했다. 청년회는 면민축구대회를 주최하는 데에 필요한 경비를 청년회원들이 직접 노동을 해 마련했다.
↑↑ 송평 축구팀.
ⓒ 주간함양
마을회관에는 1984년 8월15일 ‘8·15 경축 면민축구대회’ 청년부 우승 트로피가 보존돼 있다. 주최는 병곡면 송평청년회다. 최근에는 2017년 8.15 경축 병곡면체육대회에서 수상한 축구경기 우승 트로피도 있다. 이밖에도 수없이 많은 트로피와 우승기가 있었지만 마을회관을 다시 지으면서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알 수 없다며 아쉬워했다.

↑↑ 등구정 운동장부지희사기념비 측면에 9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 주간함양
마을을 사랑한 위인들


등구정(登九停)은 함양의 풍류선비 9사람이 정자에 올라 풍류와 시류를 즐겼다는 뜻으로 세운 정자이다. 체육활동이 활발했던 송평마을에는 과거 9명의 등구정 계원이 면민에게 부지를 희사해 조성된 넓은 운동장이 있다. 운동장 앞에 세워진 ‘등구정 운동장부지 희사 기념비’ 측면에는 이들 9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 등구정에 대해 설명하는 이상인 전 이장.
ⓒ 주간함양
이 분들의 부지 희사로 1931년 조성된 운동장은 지금까지도 면민체육대회를 비롯해 함양군의 각종 행사에 활용되고 있다. 이상인(사진) 전 이장은 9분의 등구정 부지 희사자 중 한 분의 후손이다.
이문수 이장은 “지금도 면민체육대회가 열리면 이 운동장을 중심으로 각 부락별로 천막을 치고 면민들이 화합하는 날이된다”면서 “그날은 자리 선정도 중요했는데, 소나무가 있는 명당은 송평마을의 자리로 아무도 넘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 세 명의 희사비
ⓒ 주간함양
이 마을에서 기쁜 마음으로 재물을 내놓은 일(희사)은 등구정 뿐만 아니다. 마을 내부에는 세 명의 희사 기념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첫 번째는 비는 이재교 선생에 대한 희사비로, 이 선생은 왜정시대 이후 마을 주민들의 생활이 어려울 당시 세금을 충당해 주었다고 한다. 또 겨울날의 땔감과 불지기 인건비를 지원했다. 두 번째는 경로회관 땅을 희사한 (합천이씨) 이양수씨의 공적비가 있다. 마지막으로는 현 마을회관 땅을 희사한 (성주이씨) 이교인씨의 기적비다. 또 현재의 마을회관 자리에는 고(故) 이상수씨가 자신의 텃밭을 기부하기도 했다.

↑↑ 송호서원
ⓒ 주간함양
3인을 모신 송호서원


이 마을에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09호로 지정된 송호서원이 있다. 송호서원은 1829년에 세워진 것으로 조선 전기학자인 고은 이지활 선생, 단종의 복위를 도모한 한남군, 연산군 때 벼슬을 버리고 은거한 송계 이지번 선생 등 3분의 덕행을 추모하며 위패를 모신 조선시대 서원이다. 매년 이 곳에서 3월과 9월 두 차례 제향을 지낸다.
↑↑ 이지활 공 후손 이정수 씨
ⓒ 주간함양
고은 이지활은 14세에 과거제도의 하나인 사마시에 합격해 지방관으로 지내다가,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벼슬을 버리고 거창군 소재 박유산에서 통곡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이 사실을 안 유생들이 그의 가상한 충절을 상소하여 순조임금께서 이조참의와 이조판서를 추증하고 서원 건립을 허락받아 유림에서 건립했다. 1868년에는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헐어 냈으며 1936년 서원을 다시 짓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송호서원 옆 당산
ⓒ 주간함양
섭정지나무 놀이터


송호서원 바로 옆에는 당산터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 작은 숲이다. 이 당산터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내는 곳이었으며, 마을 어린이들이 그네를 매달고 놀던 놀이터였다. 마을 주민들은 수백년이 넘은 나무로 보호수 지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섭정지나무는 이정수 주간함양 창원지사장 외조부인 이병순씨가 집 옆에 10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은 것이라고 한다. 현재는 2그루 정도가 남았다. 송평마을이 고향인 이정수 지사장은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향심과 자긍심으로 마을의 온라인 카페와 밴드도 운영하고 있다. 닉네임도 ‘섭정지나무’이다. 근처에 있었던 섭정지 새미는 송평마을의 식수제공과 빨래터로 활용되던 곳이었다.

↑↑ 충신 및 삼의사 정려비각
ⓒ 주간함양
다릿살을 베어 먹인 열부


병곡면 송평마을의 입구에는 충신 및 3의사 정려비각과 열부 이인용(李仁容)의 처 풍천 노씨비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삼강오륜의 유교적 윤리를 권장하기 위해 충신·효자·열녀에 대한 정려가 내려져 마을 입구나 대문 앞에 붉은 문을 세워 표창했다고 한다.
이 비각은 1892년에 내린 정려비로 고은 이지활, 고은 이지활의 9세손 이숙, 이숙의 아우 이진, 이숙의 아들 이한필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 증정부인 열부 풍천노씨비
ⓒ 주간함양
정려비각 옆으로는 ‘열부 이인용(李仁容)의 처 풍천 노씨비’가 있다. 열부 노씨는 노광록의 딸이며 이한필의 현손 이인용의 처이다. 남편이 병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하자 자신의 다리살을 베어 달여 먹였더니 완쾌 되었다는 열부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남편은 70의 수를 누렸으나 부인은 그 후유증으로 38세에 세상을 뜨니 향리의 진사 하재구를 대표로 나라에 상소하여 고종 광무2년(1898)에 정부인의 직첩과 정려가 내렸다’고 기록했다.

↑↑ 마을회관
ⓒ 주간함양
송평마을 정겨운 옛 지명


돌찌·포방·외몰모티·남바우·밖같남바우·안남바우·지서·산태바우·산지밭골·강정보·둥구지·섬방아실·섭정지·섭정지나무·당산·탕관바우·생이바우·지디기·새보·각시보·단쟁이보·열두마지기보·지뒤기보·늘박골·온동골·왕무덤골·감나무실·동청·산밑에 새미·새재골·오백고지·삼백고지·용소·성지골·
대파이·부엉이골·내리박골·큰질매치·큰들·저건재길·옻밭지시락·각사이다리·가운데골목·동우보·소깽분·간이골·동청다리·웃담방아실·쑥박골·각골·산지박골·작은질매치·동산골·몽당뜰·뚱뚱바우·각사이노디·외롬꼴·뿔땅골·짐무리·특골·뒷들·매봉·큰까끔·여시골·포수들·때뺏보·패구나무보·섬보·남바우 큰보
(자료제공 : 이병두·이유상·이정수·이만성·이찬수)
↑↑ 마을 회치.
ⓒ 주간함양
↑↑ 마을 돌담
ⓒ 주간함양
↑↑ 체육대회 우승 트로피
ⓒ 주간함양

유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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