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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지리산 마실 여행기
함양읍 운림1리
지리산 마실 이야기(25)
유혜진 기자 / 입력 : 2019년 06월 10일(월) 14:18
함양읍 운림1리(2019년 6월 현재)

♧ 함양읍 운림리 소재
♧ 세대 335가구
♧ 인구 763명(남386, 여377)
♧ 주요농·산물 : 양파, 벼
♧ 이장 : 권영석


↑↑ 함양의 행정 1번지로 불리는 운림1리 마을.
ⓒ 주간함양

천년의 숲 상림을 품은 행정 1번지

함양군청, 군의회, 도서관, 함양초등학교 등 함양군 주요시설이 다 모여 있는 곳이 운림1리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함양의 행정 1번지로 불리는 마을이다. 함양의 랜드마크나 다름없는 천년의 숲 상림이 절반이상 운림1리에 속해 있다.
운림1리는 1980년대까지 상동이라 불렸다. 함양읍성의 관아가 관변마을에 있었는데 고려말 왜구의 침입으로 불이 난 후 문필봉 아래 운림리에 옮겨졌다고 한다. 읍성의 동문이 있던 곳이 지금 동문네거리로 불리는 교차로이다.
↑↑ 고운노모당 회원들과 권영석 이장
ⓒ 주간함양
운림 1마을에는 상림공원을 따라 흐르는 위천수, 위천수의 둑을 쌓아 만든 저수시설인 한들보와 새보가 있다. 위천가에 위치하고 있는 혹정자나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인 학사루 느티나무(함양초등학교 내)도 상림숲 다음으로 유명한 운림1리의 자랑거리다. 운림 마을사람들은 “혹정자를 모르면 함양사람이 아니다”고 할 정도로 혹정자는 유명하다고 했다. 나무(느티나무)에 큰 혹이 있어 혹정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현재 우체국 앞에 있는 학사루도 본래 함양초등학교 안에 있던 것을 이전한 것이다. 과거 운림1리는 함양읍의 변두리 마을이었다. 주택보다 연밭이 많아 연밭머리라고도 불렸다. 지금도 함양군의회 인근을 연밭머리로 불린다. 운림1리는 군청이 들어서고 시가지가 팽창하면서 함양읍의 중심지가 됐다. 연밭이 있던 곳에 주택가가 형성되면서 마을 인구도 배로 늘어났다.

↑↑ 김말순 회장
ⓒ 주간함양
고운노모당 김말순 회장


“제가 우리 마을 현황에 대해 잠깐 브리핑 하겠습니다. 마을회관 이름 자체가 예쁜 노모당입니다. 당시 최고운(최치원) 선생님의 호를 따서 ‘고운노모당’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2004년 3월 노인 여가복지시설로 승인받아···2004년 4월 착공해서 같은 해 11월 준공 했습니다. 당시 회원수는 85명이었고 현재 회원수 46명입니다.”
고운노모당의 김말순(84) 회장은 운림1리와 고운노모당의 현황을 취재진과 노모당 어르신들 에게 소개했다.
김 회장은 토크쇼의 유명 MC처럼 능숙한 진행으로 이장, 총무 소개부터 회원 개개인의 삶을 훤히 꿰고 있다.
“제가 군청에 근무했을 때 오랫동안 여성담당을 맡아 일 했습니다. 그래서 함양사람들의 가정사를 다른 사람보도 많이 알고 있는데 움직이는 역사라고 해도 될 거에요.”
김 회장은 함양에서 태어나 함양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정년퇴임 때까지 함양군에서 공직생활을 했다. 그러다 보니 함양의 모든 역사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마을 설명을 위한 준비와 노모당 건립과정 등에서 그의 똑 부러진 성격과 추진력을 엿볼 수 있었다.

↑↑ 권영석 이장
ⓒ 주간함양
권영석 운림1리 이장


올해 2월 운림1리 이장을 맡은 권영석(66) 씨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 만든 명함을 이날 나누어 주었다. 큼직한 글씨로 이름, 전화번호만 적혀있다.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을 위한 배려다. “젊고 듬직한 이장님 덕분에 우리 마을이 혜택을 많이 받고 있어요. 오늘은 꽁치를 마을 회관에 가져와 점심 반찬으로 맛있게 나눠 먹었어요. 권 이장의 아버지는 함양교육장을 역임했어요. 마을의 일을 아주 잘해요”라며 주민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스스로 직접 입을 열지 않아도 그의 성실한 행동을 주민들이 나서서 자랑했다.

↑↑ 고운노모당 김수복 초대 회장
ⓒ 주간함양
최고령 김수복 할머니의 장수비결


마을의 최고령자라고는 믿을 수 없이 소녀 같은 미소와 부끄러움이 많은 김수복(92) 할머니는 일제감정기와 6.25를 겪은 장본인이다.
운림1리 아랫동네에서 태어나 함양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전화기와 여성공무원이 몇 없던 시절 함양경찰서에서 전화교환원으로 일 했다고 한다. 또 고운노모당 건립을 위한 추진위원장으로 초대회장도 맡았다. 노모당에 있는 어르신들이 김수복 할머니의 치아를 언급했다. “가짜치아가 없고 병원에도 잘 안가고 정말 건강하게 사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부터 즐겨 써 온 말로 행복한 삶을 말할 때 ‘5복을 갖추었다’고 말한다. 오복의 하나로 ‘장수’와 ‘건강한 치아’를 꼽는데 김수복 할머니는 이를 다 갖추고 있다.
김 할머니는 부부 사이가 좋아 필봉산 등산을 많이 다녔다고 했다. 부지런하며 웃음이 많은 것이 그의 가장 큰 장수비결이다.

↑↑ 하상남 총무가 직접그린 민화
ⓒ 주간함양
운림마을 예술가 하상남 총무


당시 23살에 대구 끝 마을에서 함양의 변두리 마을로 시집을 온 하상남(77) 총무는 운림마을의 예술가이다.
고운노모당 벽에 걸려있는 민화와 시가 그의 작품이다. “남편 친구와 내 친구가 서로를 데려가 만나게 됐는데, 그 뒤로부터 우리 집에 처 들어와 드러누웠다”며 남편이 첫눈에 반해 결혼까지 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친정이 멀어서 그때는 일 년에 한 번도 못 갔었지.” 대구에서 함양으로 시집을 와서 자식들을 다 키우고 난 후, 이제야 하고 싶은 일을 조심씩 하게 됐다고 한다. 뜨개질을 하고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취미삼아 한다고 하지만 그림 실력은 수준급이다.

↑↑ 위천수
ⓒ 주간함양
위천수 수해를 입었던 운림마을


“50여년 전 저기 위천수가 터져서 수해가 발생했잖아요. 그때 동네가 싹 다 물바다가 됐었는데, 그 때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김말순 회장이 노모당에 모인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아이고, 말도 마. 그때는 허리까지 물이 찼는데 물살이 워낙 쎄서 몇 번을 넘어졌는지 몰라. 피난을 가려고 급히 챙긴다고 챙겼는데, 귀중품은 놓아두고 반찬만 몇가지 챙겼더라”며 어르신들이 급박했던 당시의 기억을 하나 둘 떠올렸다.
↑↑ 혹정자로 불리는 운림1리 위천변 노거수와 운림정. 수령 400년으로 추정되는 이 느티나무는 지난 1972년 함양군 보호수로 지정됐다.
ⓒ 주간함양
함양군 백전면에서 함양읍에 이르는 위천은 상림공원을 지나 운림마을 앞을 흐른다. 50여년 전 비가 많이 오던 어느 여름날 강둑이 터지고 강물이 마을을 덮쳤다. 어르신들은 마을과 집 곳곳에 물이 차올라 피난을 가는 등 전쟁 못지않았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때는 정부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몰랐다. 귀했던 연탄도 물에 다 잠겨 어디다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몰랐다. 물살에 떠내려가 죽은 사람도 있었다. 마을 전체가 피해를 입었지만, 다 자신들의 운명이라 생각하며 그 시절을 극복했다”고 덧붙였다.

↑↑ 상림공원 내 약수터
ⓒ 주간함양
상림숲에도 사람이 살았다


우리나라 최초 인공림인 상림숲은 통일신라 말 고운 최치원 선생이 위천의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계절 절경을 이루는 함양의 대표 숲으로 숲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는 관광객들과 주민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힐링 공간으로 사랑받는 곳이다.
상림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함화루, 사운정 등 정자와 최치원신도비, 척화비 등이 다양하게 존재하며 문화유적지와 숲으로 보호·관리하고 있다.
↑↑ 상림입구 척화비
ⓒ 주간함양
그러나 1990년대 까지만 해도 주막과 주택 등 10여 집이 숲속에 있었다. 다미원, 경상도집, 위성집 등은 1990년대 이전에 함양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익숙한 이름이다. 운림1리 주민들의 추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하다.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상림숲의 풍경은 지금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찌짐(부침개), 도토리묵, 백숙에 동동주도 팔고 아가씨집도 있었다.”, “회치를 하고 마을로 돌아오는데 술에 취해서 치마가 줄줄 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돌아다닌 사람도 있었다.”, “숲강구 몰래 굴밤도 줍고, 냇가에서 고동도 잡았는데, 한 날은 들켜서 주웠던 것을 모조리 뺏긴 적도 있었다.” ‘숲강구’는 요즘으로 치면 숲 지킴이였던 셈이다. 숲강구는 지금 약수터 인근에서 살았다고 한다.
상림 숲에는 당시만 해도 각 마을 주민이나 단체가 모여 회치(회식)하는 곳이 70여 곳이 넘었다고 한다. 상림숲 운동장은 거창, 산청, 합천 등 인근 지역에서 다 모여 예비군 훈련을 하는 장소로도 쓰였다. 상림에는 19명의 함양 유지가 세운 십구인정과 그 옆에는 당산제를 지내는 곳이 있었다. 2000년대 들어 상림보존 바람이 일면서 숲속에 있던 민가와 음식점은 숲밖으로 이주했고 이때쯤 십구인정도 철거됐는데 정확 이유를 아는 주민들은 없었다.

↑↑ 보림사
ⓒ 주간함양
군민들의 희망 보림사


고운노모당 1분거리에는 보림사가 자리하고 있다. 보림사는 일제강점으로 피폐해진 민족정기와 혼을 되살리려는 백용성 조사(白龍城 祖師)의 뜻에 따라 1910년 지리산 벽송사에 주석하던 동운화상(東雲和尙)이 함양읍에 민가를 구하여 인법당으로 개조한 후 불법홍포와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시교당으로 창건했다. 또 유치원을 개원한 바 있어 70세를 넘긴 어르신들의 유치원 추억이 있는 곳 이기도하다.
위태로운 시기에 읍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전당으로 태어나, 지금까지도 접근성이 좋은 자리에 있어 주민들의 쉼터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미륵불로 신앙되어 왔던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18호 ‘함양 용산사지석조여래입상’이 보림사에 있다.
↑↑ 운림마을 고운노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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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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