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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제일문(方丈第一門)과 금계동(金鷄洞) 小考(소고) 3편
주간함양 기자 / news-hy@hanmail.net입력 : 2020년 10월 26일(월) 12:13
탄수 이종식 선생 비결문 (灘叟 李鐘植 先生 秘結文)

二死一生淸貧樂 두 번 죽고 한 번 사는 삶에 청빈함이 즐겁고
晝田夜讀仙示燈 낮에 밭 갈고 밤에 독서하니 신선이 불을 밝혀주네
曲折後習得開見 우여곡절 겪은 뒤에 익히면 열린 견해를 얻고
深思我宣必事知 심사숙고하여 나를 펼치면 필시 만사를 알 것이네

體剛富榮政祉忠 몸이 굳세고 부강하면 정치가 복되고 충성될 것이고
英才拔範萬代雄 영재를 발탁하여 모범 삼으면 만대의 인재가 될 것이네
我亂天命終身壽 천명을 어지럽힌 내가 종신토록 수를 누리니
國權回復千年恨 국권 회복을 바라는 마음 천년의 한이 되었네

人眼勇猛九虎宓 사람의 눈이 용맹하기가 아홉 마리의 범이 엎드린 듯 하고
能宣庸幹尊慕盡 능히 근간의 쓰임을 펼치니 존경과 사모함을 다 받네
敵我殺差使命知 적과 내가 서로 죽여야 한다는 사명을 알게 되니
天保地護萬古監 하늘과 땅이 보호하여 만고의 거울이 되네

灘叟遺言方丈門 탄수(灘叟)공의 유언인 방장문을
子功能移復生碑 자제들이 힘써 옮겨 다시 비를 세운다
金臺庵筆方丈災 금대암에서 쓴 방장재(方丈災)는
五道嶺連脈徵象 오도령에 연결된 맥의 상징일세

白頭連峯五道嶺 백두산에서 이어진 봉우리 오도령은
萬人眼息心息處 만인들의 눈과 마음의 안식처가 되네
方丈山愛母抱象 방장산은 자애로운 어머니가 끌어안은 형상이라
亂傷憶摸滿客峻 전란의 상처를 기억하는 산객들로 가득하네

智山慣豫竹浦憂 지리산은 으레 미리 죽포 공을 근심하여
義兵逢原戰勝筋 벌판에서 의병을 만나자 승전에 힘쓰라 하였네
倭侵擊義士道蹤 왜적이 의병을 공격하자 士道가 따르니
飢渴歎聲哭姓祖 주리고 마른 듯 염원하는 탄성에 온 겨레가 울부짖네

榮勢今沈慨歎民 성한 기운 이제 막히자 온 백성이 탄식하고
失國失財亡子父 나라와 재물을 잃으니 지식과 아비가 죽어가네
義兵銃志敵探偵 의병들이 총잡은 의지를 왜적들이 정탐하고
長男刑罪拒隱身 장남에게 형벌이 떨어지자 은신을 거부하네

三男代死請倭論 삼남이 대신 죽겠다고 왜놈에게 설득하길 청하여
刑場親面救命出 형장에서 몸소 만나 父兄을 구명하여 나왔네
敵從後監積骨恨 적이 뒤에서 감시하니 뼛속까지 한이 쌓이고
孤征修道念寺避 홀로 수도하고자 절간에 피할 것을 생각하였네

金鷄洞名官簿擢 금계동 이름이 관청 장부에서 삭제되고
新村全貌舊觀繁 신촌의 전모는 옛 모습보다 번성하였네
丁丑金鷄誕生當 정축년(1877) 나는 금계에서 당연히 태어났지만
古稀鷄鳴曉天譯 고희의 나이 닭 우는 새벽에야 금계였다 알려지리

金鷄避亂豫標點 금계가 피난처라고 미리 표점하니
一姓一步遠傳昊 한 성씨 한 걸음씩 널리 전해졌고
同胞戰亂自足殺 동포들은 전란에서 스스로 죽일 수 있다고
灘叟未來秘訣布 탄수 공이 앞으로의 일을 비결로 퍼트렸네

晨明早日霜老峯 동이 트면 해가 일찍 뜨는 상로봉은
陽色眺會避難處 양기가 빠르게 모여드는 피난처네
洞民功德追尊碑 동민들은 추존비를 세워 공덕을 기리고
灘叟創始金鷄洞 탄수 공은 이곳에 금계동을 창시하였네

金鷄認知文翰訪 금계에 문장가가 방문할 것을 알았나니
方丈災復文化財 방장은 재난을 극복하고 문화재가 되었네
春秋風穀山水搖 봄가을 곡식에 이는 바람이 산수를 흔들고
馬肥川獵享樂景 가을이 되면 천렵하며 좋은 경치 누리네

義兵枉臨親相逢 의병들이 왕림하자 친히 서로 만나
敵擊打同意稱寃 적이 동포들을 친 것을 원통하다 여겼네
竹浦援助勝戰望 죽포공이 원조하자 승전을 바랄 수 있었고
獨立志願謨隣暗 독립을 소원하여 이웃 몰래 도모하였네

義勝敵敗日忿奮 의병이 승리하고 적이 패하자 날로 분발하니
敵劍惡暴晝夜虐 왜적 칼날의 포악하기가 밤낮으로 잔학해졌네
竹浦三男灘叟征 죽포(竹浦) 공의 삼남 탄수(灘叟) 공이 가자
修道經秘訣因習 도를 닦고 비기를 경륜하여 인습을 끊어내었네

捕搏灘叟引質敵 탄수 공이 포박되어 끌려가 적의 인질이 되었지만
生還無證遺功除 살아 돌아와 증거가 없으니 남긴 공적이 사라졌네
寂寞千里曠野狹 고요하고 적막한 천리에 들판과 협곡은 공허한데
攝該先着那親動 이를 끌어와 먼저 착수하나 어찌 친히 움직였다 할까

千年宿夢亂災失 천년의 오랜 꿈을 난리와 재해로 잃어버리고
方丈山第一門忽 방장산의 제일문도 잊혀졌네
智異山八道人戰 지리산은 팔도 사람들의 전쟁터가 되고
洛東江落伍兵胴 낙동강 낙오병들의 소굴이 되었네
※ 죽포(竹浦) : 죽포(竹圃) 이규현(李圭玹, 1848~1935)의 호, 오도령, 금계는 지명

탄수(灘叟) 이종식(李鐘植, 1871~1945) 선생 비결 명문 논집에는 7언 8율의 비결문에 그 비밀이 들어있다. 비결문의 절반은 독립운동(의병운동) 관련이다. 탄수(灘叟)공의 아버지 죽포 이규현(李圭玹, 1848~1935)공과 장형(長兄) 이종순(李鐘純 1866~1913) 공이 정미(1907년) 의병장 석상용 의진에 총과 군자금을 지원했다가 고초를 겪은 내용이다. 탄수(灘叟)공이 실상사에 주둔한 일본군을 찾아가 처형 직전 장형(長兄)을 구명하였다는 이야기이고, 나머지는 탄수공이 비결 공부를 하게 된 계기와 미래에 대한 비결의 예언이다.
암흑의 일제 강점기에 탄수공 마천에서 해가 처음 뜨는 곳을 금계동이라고 이름하고 금계가 우는 광복을 기다렸을 것이다. 탄수공의 비결 명문에 ‘오도재는 눈과 마음이 쉬는 안식처가 된다’ ‘지리산이 팔도 사람들의 싸움터가 된다’ ‘낙동강 낙오병들의 소굴이 된다’라고 하였다. 더더욱 ‘금계에 문장가가 방문할 것을 알았나니, 방장은 재난을 극복하고 문화재가 되었네’라고 하였다. 금계동의 역사가 글을 쓰는 사람에 의해 발굴된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 은계 이진우 선생송덕비
ⓒ 함양뉴스
隱溪李璡雨先生頌德碑(은계 이진우 선생 송덕비)


은계 이진우 선생은 마천이 낳은 향토교육의 횃불이요 은인이시다. 선생은 경주이씨 신라개국 공신 알평(謁平)후손 이시며 자는 성유(性攸)요 아호가 은게(隱溪)이시다. 선생은 서기 1897년 음력 3월 12일에 마천 의탄에서 출생하시어 일생을 향토 교육 뒷바라지로 인재 양성에 애쓰시다가 1954년 1월 1일 향년 57세로 아깝게도 돌아가시었다.
일제치하의 우리 마천이 함양군 안에서도 가장교통이 불편한 두메산골이므로 나라 없는 설움과 함께 학교까지 없어 교육의 혜택마저 받지 못함을 뼈아프게 당하고 있었다. 그 무렵 선생은 앞장서 학교건립기성회를 조직함과 동시에 자기 사유재산 논 일백 두락을 진주 식산은행에 저당잡혀 그때 돈 일만 원의 큰돈을 학교건축 기금으로 마련했다. 경남도 학무국으로부터 그처럼 어렵던 4년 제 학교 설립 허가를 받아내고 뒤이어 6년제 마천국민학교로 승격시키는 데까지, 뜻을 이루셨으며 학교건립 때 돈 모든 빚을 깨끗이 청산해 주시고 백년대계의 향토교육 발전에 온갖 정성을 다 쏟으시었다.
선생의 은공을 기념하는 비석 건립 문제가 왜정 때에도 논의된 바 있으나 망국의 시대적 여건으로 비석이 서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러 참 죄송하고 때늦은 감이 있으나 선생을 깊이 추모하는 우리 면민들이 이제라도 선생의 비석을 세워 드림이 갸륵한 선생의 높은 뜻과 그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이 되는 줄 알고 온 면민의 뜻과 정성이 담긴 이 비석을 삼가 이 자리에 세운다.
1979년
비 세운이 마천면민 일동
글 지은이 시인 오동춘
글쓴이 함양 김수갑
후원 서울 마향회

이진우 선생은 6·25동란 시 마천면사무소가 전소하였고 호적등본이 불타고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호적등본을 복원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부담하였으며, 의평마을이 불이나 마을 전체가 불타고 없을 때 집을 다 지을 때까지 마을 주민을 주식(主食)을 제공하였다.

문호성 함양군 서복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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