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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제일문(方丈第一門)과 금계동(金鷄洞) 小考(소고)
주간함양 기자 / news-hy@hanmail.net입력 : 2020년 10월 19일(월) 13:43
지리산(智異山)은 대한민국 경상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3도 5개 군 13면(함양군, 산청군, 하동군과 남원시, 구례군)에 걸쳐 있는 산이다. 백두대간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지리산의 뜻은 다름을 아는 것, 차이를 아는 것, 그리고 그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뜻으로는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또 백두대간의 맥에서 흘러왔다고 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불렸다. 삼신산의 하나로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한다. 7500여 종의 식물과 동물이 서식하여 있고 천왕봉을 주봉으로 수많은 봉우리가 있다. 1967년 12월29일 대한민국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지리산은 예로부터 영산으로 추앙받아 왔으며, 이에 따른 고찰이 많고 근·현대 문화재도 많이 남아 있는 중요한 산이다.

함양군 마천면은 지리산 북쪽에 위치하여 주봉인 천왕봉에서 발원한 칠선계곡과 제석단, 세석평전에서 발원한 백무동계곡, 벽소령에서 내려온 덕천천, 뱀사골, 운봉, 아영에서 내려온 만수천이 합하여 임천강으로 마천면 중앙을 가로질러 도도히 흐르는 물이 풍부한 지역이다. 지리산 33개의 대(臺) 중에 제일금대산(第一金臺山)을 등에 업고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지리산 자락 속에 산골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마천은 금마음수(金馬飮水) 형국이라 하여 마천면(馬川面)이라 한다.

마천면은 옛날에는 마천(馬淺)으로 기록되었다가 마천면(馬川面)으로 되었고, 삼국시대부터 추정되는 마천소(馬川所), 의탄소(義灘所)가 있었다. 어느 시대부터 있었다고 알 수 없으나 나라에 중요한 목기, 숯, 옻칠·오미자 등 지리산에 나오는 특산물을 창원마을(倉村)에 모아 오도재를 넘어 함양으로 공급하였다. 마천에는 토성이 있었다. 마천조씨이다.(曹. 동국여지승람, 함양읍지) 마천소, 의탄소를 관리하는 성씨로 보이며 6·25동란 때 호적이 불타 후손들을 찾을 수 없다.

함양군 서복연구회는 1472년 함양군수 김종직 유두류록에 나오는 지리산 산행길과 인문 지리 및 지명 등 학술조사를 하기 위해 탐사계획을 지리산국립공원과의 협의하여 2020년 7월 4일 1차 탐사를 하였다. 대전에 있는 이영규씨의 안내로 서복연구회 고문인 김윤세 인산가 회장, 우성숙 강재두 부회장, 민병태 산악구조대, 이상운 국립공원함양분소, 조용섭 지리산 마실 이사장, 정세윤 주간함양 논설위원 부부, 문호성으로 팀을 꾸려 탐사에 나셨다.

1차 탐사는 적조암–환희대-독바위-선열암-독녀암(노장대)-고열암-의논대-미타봉(소림선방)-사립재골(동부)-석문(방장문)-쑥밭재-청이당(천례탕)-어름터 독가-광점동 주차장까지 약 15km이다. 점필재의 아홉 모롱이 길에서 방장문(方丈門) 석각을 만난다. 이 방장문은 칠선계곡 금계마을 입구 방장제일문(方丈第一門)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2차 탐사는 9월12일 탄수대의 방장제일문과 우락대, 구암대, 죽포대, 성교대, 덕암을 탐사하였다. 석각을 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방장제일문(方丈第一門)과 탄수대(灘叟臺)의 마애 석각 명문과 탄수공 비결 명문 논집을 도솔산인 이영규씨가 국역을 하였다. 그 내용은 금계 마을에 살았던 탄수 이종석 선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이에 대하여 쌓인 의문점을 자료로 정리하여 소개하기로 한다.

방장제일문(方丈第一門) 석각과 탄수대(灘叟臺)에 대하여 지금도 금계마을에서 이곳을 관리하고 있다. 금계마을 동사 옆 물레방아 정자에 탄수 이종식 선생 금계동 창시 기념비(灘叟李鍾植先生金鷄洞創始紀念碑)가 있다. 기념비 뒤쪽엔 언제 석각을 하였는지 모르나 암석 위에 금계동(金鷄洞) 석각이 있다.

↑↑ 김계동구 방장제일문(金鷄洞口 方丈第一門)
ⓒ 함양뉴스
↑↑ 점필재의 아홉 모롱이길 방장문(方丈門)
ⓒ 함양뉴스
■灘叟䑓(탄수대)
- 李鍾植(이종식1871~1945)

灘聲七里澹忘歸 칠리의 여울물 소리가 돌아갈 생각을 잊게 하고
回首嚴陵舊釣磯 고개를 돌아보니 엄릉이 노닐던 옛적 낚시터네
不着羊裘誰辨我 양 갖옷 입지 않았으니 어느 누가 알아볼꼬?
烟江風雨一簑衣 비바람 부는 안개가 낀 강에서 도롱이 하나 걸친 나를

<注> 칠리탄(七里灘)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동한(東漢)의 은사(隱士)인 엄광(嚴光)이 은거하며 낚시질하던 곳으로, 절강성(浙江省) 동려현(桐廬縣) 남쪽의 여울을 말하는데, 보통 은사의 거처를 뜻한다. 칠리뢰(七里瀨) 혹은 엄릉뢰(嚴陵瀨)라고도 한다. 엄광은 광무제(光武帝)의 어릴 때 친구이다.<後漢書 卷 83 逸民 列傳 嚴光>

灘叟李公杖屨之所(탄수이공장구지소)
金鷄一同謹誌(금계일동근지)

■祝願文(축원문)
- 法師 姜聖通 謹詩(법사 강성통 근시)

善哉故人李灘叟 훌륭하구나! 고인이 되신 탄수 이종식 선생이여!
千秋恒遊灵灵坮 영원토록, 항시 신령스러운 영대에서 노니시네.
願惟生前遺遺業 생각건대 생전에 선생께서 남기신 많은 일이
今日運開大㒷発 오늘에야 운이 열려 크게 發興하기를 바랍니다.

五戶紅流抱壁歸 : 오호의 붉은 물은 절벽을 감싸고 돌아가고
三門潭碧仙遊磯 : 삼문의 못 푸르러 신선이 노니는 물가로다.
灵境桃源何處問 : 선경의 무릉도원이 어느 곳이냐고 물으니
星橋坮上降靑衣 : 성교대 위에 靑衣 童子를 내려보내는구나.

不肖子 暎雨 謹韻(불초자 영우 근운)
靑雨(청우)/崙雨(윤우)/坪雨(평우)/季雨(계우)

<注> 오호(五戶)과 삼문(三門)은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천문 지호(天門 地戶)을 뜻하는 가상의 공간. 天門 地戶란 차원(次元)의 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신선 세계의 문을 말한다. 천문(天門)은 하늘 문이고, 지호(地戶)는 땅의 문. 물이 들어오는 쪽을 천문(天門)이라 하고, 나가는 쪽을 지호(地戶)라 한다. 오호강(五戶江)은 의중 마을 앞 절벽을 휘감아 돌아나가는 지점을, 삼문담(三門潭)은 우락대 아래 소가 건널 수 있는 물이 잠잠한 곳을 가리킨다. 성교대(星橋坮) - 방장제일문 앞 바위에 홈을 파서 놓은 통나무다리. 오작교·청의(靑衣) - 신선들을 모시고 있던 靑衣童子(청의동자)

■方丈第一門(방장산제일문)

萬古名勝方丈山 만고의 명승 방장산(方丈山)은
三門五戶第一門 삼문과 오호가 제일문이라네
運自大發金馬坮 기운은 금마대에서 절로 크게 일어나니
世人仰視皆歡喜 세인들이 우러러보고 모두 기뻐하네

<注> 운자가 맞지 않음. 유자의 작품은 아님, 금마대 - 금대산 마천은 금마음수(金馬飮水)의 형국, 상금대, 중금대, 하금대의 지명이 있음.
삼송(三松) 임응택(林應澤, 1879~1951) 선생의 臥遊江山(와유강산)에는 ‘방장산제일문’에 대한 기록이 있다. 임응택(林應澤) 선생은 마천면 의탄리 의중 마을에 살았던 인물이다. 臥遊江山(와류강산) 내용 중 서복 관련 자료가 있어 마천 향토지에 그대로 실었으며, 필사본은 당흥 마을 김수태 어르신이 가지고 있다.
정자亭子 운학정(雲鶴亭)를 잠간暫間지나 도마사都馬寺와 군자사君子寺에, 옛터를 찾아드니 연구세심年久歲深 고古 사寺 터가 속가俗家 성成터 되어 드니, 산수山水 풍경風景 완상玩賞하고 윤수성潤水聲을 지나갈 때 완緩 완緩 경 쇳소리 부화不和 중中에 들어가니, 작지를 머무르고 배회徘徊하여 살펴보니 중천中天에 소신 김산경가金山景佳 좋은 김대사金坮寺라. 이 무 유람遊覽하는지라 이런 명승지名勝地를 과문부입過門不入한단 말인가. 청靑 장杖을 다시 세워 한산석경寒山石經을 나가니 수간석실數間石室 정지키의 방장산제일문方丈山第一 門이라, 문門 상上에 새겼는데 백병단좌예불白炳端坐禮佛하니 백운선풍白雲仙風 기이奇異한다. 화중선경완상畵中仙境玩賞 하고 청강석교淸江石橋 찾아드니 송松 하문下問 동자童子 하니, 벽송사碧松寺 정시하다. 벽송사碧松寺를 지낸 후에 칠성동七星洞을 살펴보니 북두추성조임北斗楸城照臨이라. - [임응택(林應澤, 1879~1951)선생의 臥遊江山(와유강산)]

■금계동(金鷄洞)

탄수 이종식 선생이 지리산 제일금대산 밑에 금계동을 황금 닭이 알을 품은 형국이라 하였으며 이곳이 정감록에 나오는 명당이라 하고 피난처라 하였다. 6·25동란 이전에는 마을이 형성되지 아니하였으나 동란 때에는 이곳을 추성 의중 의평마을 및 산속에 있는 주민들의 소개지가 되었다. 이후에 마을이 형성되어 지금은 70여 가구가 살고 있으며 의탄초등학교가 폐교됨에 따라 둘레길 안내소로 되었고, 운동장에는 주차장으로 변하였다.
지역주민들은 민박마을로 탐방객을 맞이하여 소득사업과 농업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마천 특산품인 옻을(화칠) 내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마을 회관 옆 물레방아 쉼터 정자에 탄수 이종식 선생 금계동 창시 기념비(灘叟 李鍾植 先生金鷄洞創始紀念碑)가 있다. 이곳은 마천에서 해가 제일 먼저 뜨는 곳으로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의탄소(義呑所)가 의탄리(의중, 의평, 금계)에 있었으며 목기, 오미자, 옻칠, 숯 등 특산물을 만드는 곳으로 나라에서 관리하는 특수 행정구역이었다.

↑↑ 마을회관 옆에 있는 탄수 이종식 선생 금계동 창시 기념비
ⓒ 함양뉴스
■성교대 약작(略彴, 통나무다리)

1971년 추성교(능청 다리)를 놓기 전에 외나무다리로 추성, 의중, 의평 등 지역주민들이 이 다리를 이용하여 다녔다. 또한 의탄 탐방 안내소 입구에는 나무 섶다리를 만들어 다녔다. 외나무다리는 추성동 삼거리, 추성동에서 두지동으로 가는 강을 건너는 자리와 용유담에도 약작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다리는 마을이 형성되었을 때부터 주민들이 건너는 다리로 추성동 능청 다리(1971년도)를 놓기 전에 있었던 다리이다. 통나무를 겹쳐 1960년대에는 나무를 실어날랐다. 엄천강의 물이 많아 유실이 자주 되었고 유실될 때마다 지역주민들이 창암산에서 나무를 베어 보수하여 사용하였고 1970년대까지 있었다.
↑↑ 성교대 약작이 있던 위치
ⓒ 함양뉴스
금계마을을 ‘노디목’이라 하는 이유는 성교대 약작과 금계마을과 의평마을을 건너는 1984년도에 놓은 다리 자리에 흙 다리가 있었다. 이 두 다리는 1970년도에 놓은 능청 다리와 1984년도에 놓은 다리, 1995년 완공한 지리산 제1교가 놓기 전에 있었던 다리로 지리산 둘레길을 제3구간 입구에 있다.
略彴(약작)이란 한 개의 통나무로 놓은 다리. 독량(獨梁), 독목교(獨木橋), 외나무다리를 뜻하는데, 바위에 홈을 내어 서너 개의 통나무를 엮어서 만든 다리로 보인다. 냇물 가운데 바위 위에 통나무를 놓아 다리를 연결한다.

↑↑ 우락대 아래 소(牛)가 헤엄을 쳐서 건너던 지점(三門潭)
ⓒ 함양뉴스
↑↑ 구암대, 갈매기는 흰 도포를 입은 신선(선비)을 의미함.
ⓒ 함양뉴스
■우락대(牛樂臺)와 구암대(鷗巖臺)
↑↑ 죽포대(죽포장구소) 경주이공규현 갑진(1964년) 2월
ⓒ 함양뉴스
■죽포대(竹圃臺)

의중마을 입구에서 서암으로 올라가는 둘레길 옆에 산죽밭이 있다.
이규현(李圭玹, 1848~1935)은 본관 경주, 자 인집(仁執), 호 죽포(竹圃), 호군가선동추(護軍嘉善同樞) 증 병조참의(兵曺參議) 제일방장문 필획의 주인공 탄수(灘叟) 이종식(李鍾植, 1871~1945)이 죽포(竹圃)의 셋째 아들이고, 마암당을 지은 은계(溪이진우(李璡雨, 1897~1954)가 죽포의 장손자이다.

↑↑ 덤방우(바위) 새별들 가운데 있는 바위
ⓒ 함양뉴스
■덕암(德巖)
- 이진우 이보우(李璡雨 李輔雨)

새별들 가운데 덤바우(바위)가 있는데 은계(隱溪) 이진우(李璡雨) 선생이 석각하였다. 이 바위에는 선사시대로 보이는 성혈이 여러 개 있다. 이는 이곳에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1932년대에 마천-유림간 도로 확장 공사 때 방장제일문 앞 공사 중 돌칼 등 선사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어 진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 카시오페아 별자리
ⓒ 함양뉴스
↑↑ 북두칠성 별자리
ⓒ 함양뉴스
■ 선사시대 유적 성혈(性穴, cup-mark)

바위의 표면을 오목하게 갈아서 만든 컵 모양 혹은 원추형의 홈이다. 민속에서는 알 구멍, 알 바위, 알 뫼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성혈은 일반적으로 선사시대의 신앙 혹은 별자리와의 관련성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림이나 형상을 표현한 바위 그림[암각화岩刻畵]이라고 보기도 한다. 민간에서 알 바위나 알 구멍이라 부르는 장소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을 통해 근세에도 자손의 번창을 빌고자 바위에 성혈을 새기는 주술적인 행위를 지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
↑↑ 성혈 덕암 바위에 선사시대로 보이는 성혈 별자리
ⓒ 함양뉴스
선사시대에 이곳에서 별자리를 보았을 것이라 추측된다. 추성동을 칠성동(七星洞)이라 기록 (북두추성조임 北斗楸城照臨)한 내용과 오랫동안 지역주민들이 칠성동이라 하였다.와류강산 (臥流江山)
다음호에 계속
글·문호성 함양서복연구회 회장
주간함양 기자  news-h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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