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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부대끼며 사는 게 사람 사는 재미”
창간 17주년 특집 4대가 산다- 서상면 신기마을 장운택 씨 가족
정세윤 기자 / 입력 : 2019년 05월 20일(월) 13:35
예나 지금이나 4대가 한집에 살기란 쉽지 않다. 대가족 사회였던 예전에는 평균 수명이 짧았던 탓에 4대가족 구성 자체가 쉽지 않았다면, 백세시대라는 요즘에도 4대가 함께 사는 일은 여전히 흔치 않다. 이웃은 물론이고 가족끼리도 사생활을 중시하는 세태이고 보면 여러 대가 한집에서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4대가 한 지붕아래서 가족애를 나누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이웃이 있다.
주간함양은 창간 17주년과 ‘가정의 달’을 맞아 아름다운 4대가족 이야기를 전한다.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신기마을 장운택(67) 씨 가족이 그 주인공이다. “서로 부대끼며 살아야 가족의 정(情)과 사랑을 더 느낄 수 있다”는 장 씨 가족은 4대 8명이 한집에 살고 있다. 어머니와 아내, 아들 부부, 손자까지 4대다.
↑↑ 5월5일 어린이 날 연휴를 맞아 서울과 부산에 사는 동생 내외가 함양군 서상면 신기마을 장운택(67‧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씨의 집을 찾아 노모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장운택 씨를 기준으로 시계방향으로 조복주(89) 어머니와 손자 여준(5), 아내 임양근(56) 씨와 손녀 은서(3), 며느리 송정화(33), 설정숙(55)‧장운금(54) 부부, 장운수(61)‧정효순(56) 부부, 아들 장석희(35), 손자 언학(8).
ⓒ 주간함양

“북적북적 부대끼며 사는 게 사람 사는 재미”

↑↑ 언학이와 여준이
ⓒ 주간함양
4대 언학이의 가족 소개


증손자들에게 왕할머니로 불리는 조복주(89) 할머니가 이 집의 가장 큰 어른이다. 다음은 2대 장운택 씨와 아내 임양근(56) 씨. 3대 석희(35) 씨와 송정화(33) 씨 부부, 그리고 4대 언학(8)이, 여준(5)이, 은서(3)까지 모두 여덟 가족이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언학이에게 가족 소개를 부탁했다.
“저는 장언학이고요, 제 동생 장여준, 장은서입니다. 여준이는 유치원에 다니고 은서는 어린이집에 다닙니다. 왕할머니 이름은 조복주입니다. 할아버지는 장운택, 할머니는 임양근...”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가족을 일일이 소개한다.
장 씨는 아내 임양근(56) 씨와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막내이자 외동아들인 석희(35) 씨가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2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3대가 한집에서 살았다. 5년 전 아들 석희 씨 가족이 귀향하면서 4대 가족이 됐다.
석희 씨는 8년 전 진주시 명석면이 고향인 송정화(33) 씨와 결혼했다.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할 무렵이다. 어려서부터 삼촌, 고모들과 함께 살았던 것이 익숙했던 석희 씨는 부산 생활을 정리하고 귀향을 결심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에 시할머니까지 층층시하로 들어가야 하는 시댁 살이었지만 아내 정화 씨도 흔쾌히 동의했다.
이들 3대 부부는 중‧고등학생 때 사귀기 시작해 결혼까지 골인한 각별한 인연이다. 서상고 2학년이던 석희 씨가 학교 교류 행사로 진주 명석중학교를 방문했을 때 아내 정화 씨를 처음 만났다. 그때부터 10여년 열애 끝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 주간함양
3번째 지은 4대 가족용 집


할머니는 학생 때부터 손자 석희 씨와 정화 씨가 교제하던 것을 이미 눈치 챘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 우리집에 몇 번 놀러 왔었는데 왜 몰라. 그 때부터 사귀는지 알고 있었다”라고 했다. 두 사람의 교제사실을 알면서도 눈감아 준 모양이다. 그러나 정작 석희 씨의 어머니는 두 사람의 교제 사실을 몰랐었다며 결혼 전에서야 알았다고 한다.
조복주 할머니는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옛일을 또렷이 기억한다. 가까운 곳은 지팡이 없이도 거동이 가능할 만큼 건강하다.
신기마을에 정착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 주간함양
“지금 이 집은 3번째 지은 거야. 내가 시집와서 원래 살던 곳은 대남리 노상마을이었어. 큰아들(장운택 씨)이 아주 어렸을 때 집을 지어 이 동네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6.25 때 집은 불타고 집터만 있는 땅을 사 집을 지었다고 한다. 그 후 식구가 늘어나면서 좀 더 큰 집으로 다시 지었다. 이 터에 두 번째 집을 지었던 것인데 두 번째 집을 지었던 일은 장 씨의 기억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는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가 손수 집을 지어 8남매(4남 4녀)가 북적이며 컸다”고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장 씨 가족이 이 터에 3번째 지은 집이다. 아들 부부와 손자를 위해 2년 전 현대식 2층집을 지었다. 서울에서 건축업을 하는 동생 운수(61) 씨가 직접 건축했다.
4대가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명절이나 가족 행사가 있는 날은 이 집도 비좁다. 형제와 조카들이 다 모이면 50명 쯤 되는 대식구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형제들이 다모이면 신기마을 주민수보다 많다고 하니 온동네가 떠들썩하단다.

↑↑ 1991년 3월 고 장도준 옹 회갑연.
ⓒ 주간함양
가슴에 묻은 아픔 가족애로

조복주 할머니는 14년 전 남편(당시 84세)을 떠나보내고 홀로 됐지만 자식들과 손자들이 잘하고 화목하니 아무 걱정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할머니에게도 내색하지 못하는 아픔이 있다. 8남매 중 셋째 아들을 가슴에 묻었다. 군복무 중 불의의 사고로 젊은 나이에 세상과 이별했다. 매년 현충일이면 온가족이 국립묘지를 찾는다. 수십년째 이어지는 ‘의 좋은 형제’들의 연례행사다.
며느리 임양근 씨는 “군 복무 중에 돌아가신 도련님은 형제들 중에서도 총명해 진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유명 대학에 진학해 가족들의 기대가 컸었다”며 “시어머니에게는 한(恨)으로 남아 있을 텐데 내색 한번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는지 장 씨 형제들은 자주 고향을 찾아 이웃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가족애를 과시한다. 2~3년에 한번 꼴로 단체여행을 떠난다. 지난해에는 버스를 전세 내 통영을 다녀왔다. 식구가 다 모이면 전세버스 1대도 모자란다. 몇 년전에는 제주도 여행을 했다. 28년전 아버지의 회갑잔치를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두었다. 온가족이 모이면 한번씩 틀어놓고 당시를 추억하기도 한다.

↑↑ 장남 장운택 씨 결혼식 사진.
ⓒ 주간함양
김장하는 날은 잔칫날

장씨가의 김치 담는 날은 잔칫날이다.
1톤 트럭 한 대분이 기본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7남매 가족이 다모여 김장한다. 장 씨는 “김치 담는 양도 양이지만 온 식구가 다 모이면 거창하다”면서 “그게 사람 사는 재미 아니냐”고 했다.
지난 5월5일 어린이날 연휴에도 서울에 사는 큰 동생 장운수(61), 정효순(56) 씨 부부와 부산 작은 동생 장운금(54) 설정숙(55) 씨 부부가 어머니를 뵙기 위해 고향을 찾았다. 이들 동생 부부는 “우리야 잠시 왔다 가면 되지만 형님과 형수님이 고생 하신다”면서 “늘 고맙고 감사하다”고 했다.
운수 씨와 운금 씨 부부도 몇 년 안에 귀향할 예정이다. 운수 씨는 옥산마을에, 운금 씨는 부전마을에 이미 집과 논밭을 장만해 두었다. 인근 안의면에 사는 여동생까지 7남매 중 4남매가 지근거리에 모여 정 깊은 가족애를 나누고 살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
ⓒ 주간함양
장 씨는 서른한 살에 결혼했다. 당시로서는 노총각 소리를 들었다. 처고모의 소개로 11살이나 어린 서울 처녀 임양근 씨와 혼례를 올렸다. 결혼 후 이곳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지금껏 살고 있다. 토박이 장운택 씨 부부는 부모공경은 물론 마을을 위해서도 많은 봉사를 했다. 장 씨는 3번에 걸쳐 15년이나 마을이장을 했고 아내도 2번이나 부녀회장으로 일했다. 결혼 후 36년 동안 부모님을 공양해온 임양근 씨는 지난 5월8일 어버이날 ‘효부상’을 받았다.

↑↑ 할아버지 껌딱지 은서.
ⓒ 주간함양
은서는 할아버지 ‘껌딱지’


조복주 할머니는 며느리와 손자며느리, 아들과 손자 자랑이 끝이 없다.
하지만 “농사일은 아직 손자가 아들을 따라가려면 멀었다”며 아들 장 씨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그러면서 “손자들은 얼마나 예쁜지 말도 못한다”며 “같이 사니 더 예쁘다”고 했다. 언학이, 여준이, 은서도 “왕할머니 최고”라며 엄지척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보다 왕할머니가 좋으냐”고 하자 “할머니, 할아버지도 최고”라며 비교를 거부한다.
↑↑ 손자들이 할아버지가 만들어 준 그네를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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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씨 부부의 내리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막내 은서는 할아버지 ‘껌딱지’다. 할아버지는 늘 은서 차지다. 장 씨는 아래채에다 손자들을 위해 그네를 만들어 주었다. 할아버지의 선물이다.
4대 은학, 여준, 은서가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4시가 되면 아이들의 목소리로 조용했던 집안은 활기가 솟는다. 언학이는 여덟 살이지만 4대가의 맏이답게 듬직하다. 둘째 여준이는 에너지가, 막내 은서는 애교가 넘친다.
장석희, 송정화 씨 부부는 “어른들과 함께 살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좋은 점이 훨씬 많다”며 “아이들의 육아나 교육에도 좋은 것 같다”고 했다.
↑↑ 집 근처에 짓고 있는 한옥펜션.
ⓒ 주간함양
장 씨는 집 맞은편 양지바른 터에 한옥펜션을 짓고 있다. 신기마을은 남덕유산과 영각사 초입에 위치해 사시사철 관광객과 등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석희 씨 부부가 농사일과 숙박업을 병행하며 고향에서 젊은 꿈을 펼칠 또 하나의 기반을 마련 중이다.
조복주 할머니는 “증손자 은학이가 결혼해서 고손자를 낳을 때까지 건강하게 사시라”고 했더니 “그때까지 살면 안된다”며 손사래를 친다. 환하게 웃음 짓는 왕할머니의 얼굴에서 4대가족의 행복이 넘쳐난다.
↑↑ 2018년 제주도 가족나들이.
ⓒ 주간함양
↑↑ 2018년 제주도 가족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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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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