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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 당신이 그립습니다”…정룡 화백 2주기 추모제
안의예술마을 무진참미술관서, 유품보존회 회원·유족 등 참석
유혜진 기자 / 입력 : 2018년 11월 19일(월) 13:34
↑↑ 서승아 부토 무용가의 퍼포먼스
ⓒ 주간함양
고(故) 무진 정룡 화백의 서거 2주기를 맞아 그를 기리는 추모제가 11월11일 안의예술마을 무진참미술관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식에는 무진참미술관유품보존회 김경두 회장을 비롯, 김윤택 함양군의회의원, 김흥식 함양문화원장, 무진참미술관유품보존회 회원 등 30여명과 아내 나여진 작가, 큰아들 정영주씨가 참석했다.

행사는 참석자 소개, 추모공연, 유족대표 시 낭독, 오찬과 제향 등의 순으로 거행됐다.

↑↑ 슬기둥 국악 김기룡 원장의 대금연주
ⓒ 주간함양
↑↑ 정경화 시인 헌시 낭독
ⓒ 주간함양
특히 서승아 부토 무용가의 퍼포먼스, 슬기둥 국악 김기룡 원장의 대금연주, 정경화 시인의 헌시 낭독 등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대표 예술인들이 출연해 무진 선생을 추모했다.

↑↑ 김경두회장
ⓒ 주간함양
무진참미술관유품보존회 김경두 회장은 “옛말에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있다. 길어야 고작 100년 인생이지만 위대한 예술은 수천년을 변하지 않고 간다”면서 “무진선생은 가셨지만 그를 기리는 사람들과 함께 그 분의 심오하고 독특한 예술은 천년만년 이어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아내 나여진 작가
ⓒ 주간함양
고인의 아내인 나여진 작가는 “그가 떠나기 4년 전 ‘60년 공부를 하고 나니 화선지를 폈을 때 이제 어디에 점을 찍을지 알겠다. 이제 시작이다’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면서 “그 짧은 시작으로 그의 예술세계를 마무리 하지 못한 채 갑자기 떠나 더욱 그리움이 남아있다”고 전했다. 그는 수십년 세월을 뛰어난 예술가로 인정받아 왔음에도 늘 예술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다고 했다. 고인이 떠난 후 무진 정룡과 그의 아버지가 남긴 작품으로 가득한 미술관도 오래 머물 수는 없는 상황이다. 미술관 관장을 맡고 있는 그녀는 “그림을 그릴 때 목숨과 바꿔 그리지만 그린 후의 작품은 내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던 무진선생의 뜻대로 당분간 작품들을 잘 보관하다 오래 보존될 수 있는 박물관, 전시장 등으로 기증할 계획이라고 했다.

고인의 큰아들인 정영주씨는 “주로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의 작품 활동을 해온 아버지는 아들과의 관계에서 매끄럽지 못했다”며 화백이 아닌 아버지 모습에 대한 기억을 들려주었다.
그의 어린 시절 무진선생은 전국 방방곡곡으로 예술 활동을 다니다보니 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이 많지 않았다.

평소 엄하고 냉정하다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아들을 찾으며 “보고싶다. 집에 오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그러나 그때도 의견이 달라 마찰이 있었고 마음속의 응어리가 풀리지 않은 채 아버지는 떠났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일까 늘 고민해 왔었는데 오늘 서승아 선생님의 부토 무용을 보고 깨닫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 서승아 부토 무용가의 퍼포먼스
ⓒ 주간함양
이날 선보인 서승아 부토 무용가의 퍼포먼스는 고 무진 화백의 빙의가 된 것처럼 경이로웠다. 붓으로 예술의 혼을 불태우는 모습과 마지막 쓸쓸히 떠나면서 한 곳만을 응시하는 모습을 통해 무진 선생의 예술세계와 생애를 표현했다. 이를 지켜보던 아들의 눈시울은 금세 붉어졌다. “한 평생 예술의 혼을 담고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는 그것이 공허함으로 돌아왔을 것이다”면서 “아버지는 가족들을 제일 먼저 보고 싶고 그리워했던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말했다.

ⓒ 주간함양
무진정룡 화백은 1941년 11월에 태어나 한평생 예술가의 길을 걸어오다 지난 2016년 1월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6세.

그는 한국화가로 그 중에서도 인물화가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미술 공부를 한 부친 고(故) 파민 정호 화백(1915~1992)의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그림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 어린 시절 6·25를 겪으면서 고향인 안의에서 판자조각 위에 숯으로 그린 인물화가 화제를 모았다. 언론에서는 ‘한국이 낳은 소년 피카소’란 타이틀로 극찬 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으로 경무대(옛 청와대)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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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1956년 열린 개인전을 시작으로 개인전 17회, 초대전 13회, 해외전 6회, 누드사진전 10회, 부자전 6회, 단체전 64회, 문하생전 8회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또한 행위예술 무진아리나 55회, 무진용틀임 62회, 자유자재 즉흥휘호 532회 등 그 만의 독특한 예술혼을 불태운 예술계의 거목이었다.

특히 ‘누드 퍼포먼스 페스티벌’ ‘무진용틀임’, 청소년들을 위한 ‘소소뜨라’ ‘곤지곤지’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대중과 미래 세대에 예술적 가르침을 베풀기도 했다.

그는 함안 법수면 우거초등학교에서 미술관을 운영할 때 제자였던 현재의 부인인 나여진 선생을 만나 부부가 되었다. 부부가 함께 20여년 전 고향인 함양으로 돌아와 2010년 7월부터는 안의예술마을 내 (사)무진참미술관을 개관했으며 어린이 청소년 예술놀이, 체험 예술 학습, 생동예술 환 코리아 누드퍼포먼스 페스티벌 등 지역민들을 위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이러한 뜻을 함께하기 위해 지난 2012년 60여명이 ‘무진참미술관 후원회’을 결성, 전시회와 부대시설을 구입하는 등 무진선생의 예술 활동을 지원해 왔다.
↑↑ 고(故) 무진 정룡 화백(사진 오른쪽)과 아내 나여진 작가
ⓒ 주간함양


등 뒤에 사람이 남았습니다

                                      나여진

당신은 사람에게
등을 보이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등 뒤에서 이렇게
저녁놀 저물고 있는 사람의 눈길이
얼마나 막막할지 모르지 않을 당신이

동백꽃 겨울 칼바람
툭, 툭 모가지 부러지는 소리 아래로 가시는 것을,
끝내 말리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그냥 그렇게 떠나고 싶다고
마구 떠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등 뒤에 대책도 없는 사람이
남겨진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당신이
한마디 양해의 말도 구하지 않고
그렇게 소리 없는 눈물 돌아설 줄 몰랐습니다.

아주 바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셨지만
당신이 저 세상 문턱을 너머 이곳으로 보내오는,
일렁이는 당신의 그림자 그 깊은 가슴속에
당신의 내가 있습니다.

당신의 등 뒤에 사람인 내가 남아서
이렇게 당신이 그립습니다.

↑↑ 1995작 '땅속까지 곤두박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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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작 '마고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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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작 수렵도'자유로운 학이여 한가로운 구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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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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