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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국면 맞은 함양 산양삼(1)
한국 산삼의 역사적 정체성
김경민·곽영군 기자 / 입력 : 2022년 07월 22일(금) 20:57

지난해 함양군에서는 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가 열렸다. 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는 오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산삼 종주국의 위상을 되찾고 한국 산삼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행사로 산삼의 고장인 함양이 그 중심에서 역할을 했다.
산양삼 전시를 비롯한 가공 제품 소개, 체험, 학술회의, 이벤트 등 다양한 엑스포 프로그램들을 통해 산양삼은 전국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건강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함양 산양삼은 시기에 있어서 산업적으로나 관광적으로나 더 큰 가능성을 품게 됐다.
이에 본지는 ‘새로운 국면 맞은 함양 산양삼’이라는 주제로 산삼의 역사적 정체성부터 시작해 효능 연구, 산업의 현재 진행도, 산삼축제를 통한 관광 활성화 방안 등 산양삼에 대한 내용을 다채롭게 준비했다. 이를 통해 엑스포 이후의 함양 산양삼 발전 방향에 대해 독자들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글 싣는 순서>
1. 한국 산삼의 역사적 정체성
2. 주목할 만한 산양삼의 약리적 효능
3. 국내 산양삼 정책과 현황
4. 함양군 산양삼 산업 발전 방향
5. 엑스포 이후의 함양산삼축제

 

한국 산삼의 역사적 정체성

 

지난해 9월 막을 올린 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는 ‘산삼·항노화’를 테마로 찾아오는 이들로부터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했다. 전국의 많은 관광객들에게 함양 산삼의 가치를 알리는 동시에, 항노화 산업 관련 기업들의 발전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다만 우리 함양이 내세우고 있는 이 산삼의 역사와 관련해서는 엑스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들이라도 머리가 갸우뚱 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산삼의 우수성을 매번 강조해왔지만 정작 산삼의 역사적 정체성에 대한 내용은 학술회의를 통해 조금 언급된 것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평가가 부지기수였다.
어쩌면 자부심과도 연결될 산삼 종주국이라는 타이틀이 앞으로 더욱 견고해지기 위해서는 역사적 인식이 바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느 분야든 역사라는 재료는 산업적으로나 다양한 부분에 있어 항상 풍부한 창의력을 제공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시작을 알리는 이번 첫 회차에서는 연구, 산업, 관광 분야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리 산삼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국내 산삼의 역사적 우수성을 확인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40년 가까이 산삼 분야에서 연구를 해오고 제6대 한국산삼학회장을 지낸 바 있는 정찬문 한국삼기술정보 산삼연구소장을 직접 만나 한국 산삼의 역사적 정체성에 대해 듣는 시간을 가졌다.

↑↑ 지난 7월5일 청주에서 정찬문 한국삼기술정보 산삼연구소장을 만나 한국산삼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 함양뉴스
산삼의 종주국은 어디?

먼저 한국산삼의 역사적 변천을 간단히 요약하면 삼국시대는 산삼, 고려시대는 산양삼 그리고 조선시대는 재배삼 형태로 관리되었으나 현재는 산삼, 산양삼 그리고 재배삼이 공존하고 있다. 산삼은 산에서 자생한 삼이고 산양삼은 산에서 기른 삼이며 재배삼은 밭에서 재배한 인삼을 말한다. 산삼이 역사적 기록에 의해 처음 소개된 것은 기원전과 기원후 즉 BC와 AD가 넘나드는 삼국시대 시기다. 산삼을 나타내는 삼(參)이라는 글자는 중국 한나라 때 사유가 지은 <급취장>(急就章) 즉 한자교본에서 처음 등장했다. 우리 한국도 석삼(參)자를 써왔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인삼삼(蔘)자로 바꾸었고 중국이나 일본은 아직도 석삼(參)을 쓰고 있다.
최초로 산삼을 체형으로 평가한 기록은 200년대 중국 위나라 때이다. 당시 오보(吳普)가 지은 본초학서 <오보본초>(吳普本草)에 의하면 “산삼의 뿌리는 사람의 머리, 얼굴, 손, 다리 등을 닮았다”고 산삼을 체형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이 기록과 관련해 정찬문 소장은 형태적 특성을 따졌을 때 당시 오보는 백제에서 가져온 백제삼을 보고 기록한 것이 분명하다며 이것이 중국에는 산삼이 없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산삼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최초 기록은 언제일까. 놀랍게도 최초 기록은 시의 형태로 담겨져 있었다. 500년대 중국 양나라 도홍경(陶弘景)의 <명의별록>(名醫別錄)에 기록된 ‘고려인삼(산삼)찬’이라는 시에서 산삼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 인삼은 잎자루가 셋이구나 / 햇빛을 등지고 음지를 향하는구나 / 나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거들랑 / 자작나무 아래로 와서 찾아보렴 /’ 이 시 구절에 산삼의 형태적, 생리적, 생태적 특성이 모두 들어있다. 주목할 부분은 이 시는 당시 고구려인(작자 미상)이 중국에 산삼의 형태를 소개하고 가르쳐주는 차원에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즉 오늘날까지도 이 시 구절은 우리 산삼을 대표하는 함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과 더불어 앞서 밝힌 중국에는 산삼이 없었다는 정찬문 소장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하나의 기록이다.
우리나라가 산삼 종주국임을 알 수 있는 기록은 886년 신라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이 쓴 시문집 <계원필경>(桂苑筆耕)에도 등장한다. <계원필경>에는 우리 산삼이 ‘해동인형삼’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당시 당나라에 유학 중이던 최치원 선생이 중국에서 바라봤을 적의 산삼의 고장은 동쪽의 나라라는 뜻에서 표현한 것이다. 또 중국이 대국이라는 위치에 삼국시대 이래 1000년 이상을 한국에서 산삼을 진헌품목, 진상품목, 수교품목 그리고 공답품목으로 정한 아픈 역사도 <삼국사기>(三國史記) 등 여러 문헌에 남아있다는 점에서 한국이 산삼 종주국임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로 볼 때 앞서 밝힌 오보가 쓴 <오보본초>의 산삼에 대한 형태를 설명한 내용도 신라나 백제에서 가져온 삼을 보고 쓴 기록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정찬문 소장은 “그동안 한국은 산삼 주 생산국이었고 중국은 주 소비국이었다”며 “한국에서 산삼을 중국에 바친 기록은 많아도 중국에서 산삼이 넘어온 역사는 한 줄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즉 우리 한국이 산삼 종주국이라는 명백한 증거”라고 전했다.

↑↑ 정찬문 소장이 <인삼사>에 기록된 한국산삼 문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함양뉴스
산삼을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관계


산삼에서 산양삼으로 넘어온 시기는 고려시대부터다. 우리나라 최초 산양삼 재배가 고려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중국 송나라 사신인 서긍(徐兢)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선화봉사고려도경>은 서긍이 고려에 한 달간 머물면서 고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탐색한 후 본국에 돌아가 그림 형태로 기록한 책을 말한다. 당시 서긍은 <삼국사기> 저자 김부식(金富佾) 선생과도 교류가 잦았다고 한다.
해당 저서는 산양삼 재배에 대한 기록뿐만 아니라 오늘날 홍삼의 전신인 생삼과 숙삼에 대한 기록도 볼 수 있다. 이미 이때부터 생산을 넘어 가공 작업까지 진행되었음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정찬문 소장은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생삼과 숙삼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것이 오늘날의 홍삼의 전신이 되었다는 사실을 중국 송나라 사신이 증명한 것”이라며 “즉 우리나라는 이미 고려 시대부터 생산뿐만 아니라 가공에도 손을 댄 것이다. 중국 역사에서는 어느 책에도 이러한 가공에 대한 역사를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고려시대에 생산이나 가공에 있어 많은 부분들이 진보한 반면 삼국시대부터 중국에 삼을 바쳐야만 했던 역사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1451년 조선시대 문종 1년에 편찬된 <고려사>(高麗史)를 보면 고려시대에는 산삼 등을 중국 원나라에 지속적으로 조공해왔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역사가 계속해서 이어지자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공납 물량이 모자라자 삼 채취를 금지하는 금삼절목 규정과 법률을 만들어 산삼을 국가가 관리했고 1700년대 영조때는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에 봉표를 만들어 세워 왕실 산삼의 수요를 충당한 사실도 있다.
한국산삼은 중국의 역사를 바꾸어 놓기도 했다. 당시 조선에서 명나라로 산삼이 많이 팔려나갔는데 이때 여진족 누르하치(努爾哈赤)가 그 중간길을 가로막으면서 그 상권을 움켜잡았다. 즉 먼저 조선에서 산삼을 싸게 산 후 명나라로 다시 파는 일을 반복했고 여기서 발생한 수익으로 군비물자를 조달했다고 한다. 이는 곧 누르하치가 청나라를 세우는 역사로 이어지게 되는데 산삼이 어느정도 잠재적인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다.
앞서 확인한 사실들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 산삼에 대한 기술과 정보의 진원지는 한국이었다. 그러나 1700년대 이후에는 산삼사업이 사라지고 재배삼이 100여년간 세계 시장을 선도하면서 산삼의 역사는 여기서 멈추게 된다.

↑↑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 이마무라 경찰부장이 쓴 <인삼사>(人蔘史)
ⓒ 함양뉴스
<인삼사>를 통해 본 한국산삼의 우월성


한국 산삼의 문화적 우월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제강점기 시절 당시 조선총독부 이마무라 경찰부장이 내로라하는 관련 전문가들을 모두 집결시켜 작성한 <인삼사>(人蔘史)가 증명하고 있다.
지금부터 100여년전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책 <인삼사>는 총 7권으로 역사 이래 최고의 인삼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화자 되고 있는 중이다.
↑↑ 정찬문 소장이 <인삼사>에 기록된 한국산삼 문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함양뉴스
책의 주 내용으로는 ‘인삼 발달사 기록’, ‘자연산삼과 산양삼의 형태’, ‘산양산삼 판매’ 등을 담고 있으며 한국에 대한 내용은 90%를 차지한 반면 중국과 일본의 산삼 문화는 매우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심마니 생활상에 대한 기록, 산삼의 형태적 특성을 노두·횡취·투근으로 구분하여 설명한 부분, 원형삼 형태의 산삼 수제품 판매 기록 등 한국을 중심으로 산삼의 역사가 사진 및 그림과 함께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추가로 <인삼사>를 통해 중국의 고문서 <본초강목>(本草綱目) 등에 기록된 잎의 배열, 꽃의 배열 등 산삼 형태에 대한 내용의 오류도 간접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즉 산삼의 역사에 있어 한국의 비중이 크고 그 어느 나라보다도 기록의 가치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나라가 아닌 제3자 입장의 다른 나라에서 객관적으로 증명한 셈이 됐다.
정찬문 소장은 “한국, 중국, 일본 동아시아 삼국의 그 오랜 산삼의 역사를 가장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담고 있는 책이 <인삼사>”라며 “하루빨리 <인삼사>가 번역되어 우리의 정통성을 후학들이 십분 이해하도록 기회를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전했다.
끝으로 정찬문 소장은 산삼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찬문 소장은 “1700년대 이후 산삼사업은 사라졌지만 2004년 이후 함양이 산삼축제를 선도해 산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2011년 이후 임촉법까지 공포되면서 이제 산삼사업의 중훙시대를 열어가고 있다”며 “사업의 시대를 열어가는 것과 함께 산삼의 역사적 사실을 발굴하는 작업을 지속해 정통성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삼 홍보전시관, 기념관, 박물관 등을 많이 신축해 산삼에 대한 인문학적 감성을 키우고 국민 생활 속으로 산삼이 녹아들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경민·곽영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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