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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 세기사진관 정찬기 대표
‘혼 빼앗는 기계’에 혼을 담아 47년 ‘외곬인생’ 후회는 없다
정세윤 기자 / 입력 : 2019년 06월 24일(월) 11:27
↑↑ 세기사진관 정찬기 대표
ⓒ 주간함양
“사진관이 잘될 때 함양읍에만 15개나 있었다. 면단위에도 두 세 개 정도는 사진관이 있었다. 하지만 면지역 사진관은 사라진지 오래고 함양읍에도 겨우 4곳만 남아 있다”

함양읍 함양로 1138 동문네거리 인근 세기사진관 정찬기(64) 대표는 함양 군내 사진관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다. 5형제의 맏이로 함양읍 관동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 탓에 고교 진학의 꿈을 접어야했다. 중학교 졸업 후 읍내 한 사진관에 취업해 사진을 업으로 외곬인생을 산지 어느덧 47년 세월이 흘렀다. 한창 일이 많았던 2000년대 초반까지는 잠시 쉴 틈조차 없었다고 한다. 디지털카메라가 나오면서 점차 일이 줄어들더니 불과 몇 년 새 스마트폰에 고화질 디지털카메라 기능이 결합되면서 급격하게 매출은 줄어들었다.

↑↑ 세기사진관
ⓒ 주간함양
정 대표는 “내 가게라 월세 걱정 없으니 계속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벌써 문 닫았을 것”이라며 “평생 해왔던 일인데 쉽게 손을 놓을 순 없다”고 했다. “장날이면 줄을 서서 기다렸을 만큼 손님이 많았던 좋은 시절도 있었다”며 지난날을 떠올린다. 그는 “예전에 사진관에서 많이 사용했던 사진기가 저 카메라”라며 사진관 한쪽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원판사진기를 가리킨다. 원판사진기는 마그네슘과 화약을 섞어 폭발하는 빛으로 사진을 찍는데 열판만 찍어도 사진관 안이 뿌연 연기로 가득 찼다고 한다. “졸업사진 같은 단체사진은 일반사진 보다 빛을 많이 내야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있어 마그네슘과 화약 양을 많이 사용했다. 그래서 ‘뻥’하고 폭발하는 소리도 컸고 연기도 많이 났다”고 했다.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사진을 수정하기 전에는 필름 원본에다 연필로 직접 수정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규모가 큰 사진관에는 촬영기사, 암실기사, 수정기사가 따로 있었단다. 수정기사는 그림에 소질도 있고 섬세한 면도 있어야 했기 때문에 촬영에서 수정까지 모두 할 수 있는 기사는 많지 않았다. 컬러사진 수정은 더욱 어려워 컬러필름 수정기사는 경남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한다. 정 대표는 남들보다 빨리 2년 만에 모든 기술을 익혔다. 진주, 삼천포 등에서 기사로 일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1980년 함양읍 구장터에 사진관을 개업했다.

↑↑ 원판카메라 앞에 선 정찬기 대표
ⓒ 주간함양
당시 흑백사진 인화장비를 갖춘 사진관은 군단위에도 더러 있었지만 서부경남에서 컬러사진을 인화할 수 있는 곳은 진주가 유일했다. 진주 현상소에는 몇 명의 수정기사를 고용하고 있었으나 서부경남 전 지역에서 들어오는 작업량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진주 현상소가 일이 많을 때는 컬러사진 수정작업을 함양에 있던 정 대표에게 의뢰했을 만큼 실력을 이미 인정받고 있었다. “그 때는 ‘삯 수정’이라고 했는데 낮에 사진관을 하고 밤에 부업으로 진주 현상소에서 보내온 필름을 수정 해주었다”고 했다. 사진관 일에 예식장 일까지 점차 일이 많아지면서 밤을 새는 날도 잦아졌다.

↑↑ 웨딩사진을 촬영했던 반자동카메라
ⓒ 주간함양
정 대표는 사진관을 하다 보니 아내와 함께 1991년부터 10년 넘게 농협예식장을 위탁 운영했다. 1년에 150~160쌍씩, 어림잡아 총 2000쌍은 결혼 시킨 것 같다고 한다. 주로 결혼식은 주말에 많아 365일 제대로 쉬어 본 일이 없었다고 했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 했지만 “그동안 함께 고생한 아내가 늘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자신이 못다 했던 학업의 꿈을 대신 이루고 연구원으로, 공무원으로 직장생활 하고 있는 두 아들도 정 대표의 자랑이자 든든한 버팀목이다.

그는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틈틈이 장학금을 기부하기도하고 보육시설에 15년 동안 매달 성금을 기부하며 이웃을 돕는데도 솔선한다. 가난으로 인한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란다.

↑↑ 원판카메라 앞에 선 정찬기 대표
ⓒ 주간함양
“나에게 사진은 생활이다”는 정찬기 대표. 어려서부터 수재로 불렸던 그가 상급학교 진학의 꿈을 접고 평생 한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는 자신에게 삶의 밑천이었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장비들도 사진관을 정리하는 날 박물관에 기증해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한다.
정세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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