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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 아세아기계상사 박찬익 대표
“끝까지 버티는 자가 승리자” 농기계 수리·판매 40년 외곬
정세윤 기자 / 입력 : 2018년 11월 12일(월) 10:06
ⓒ 주간함양
“몇 년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했고, 목표가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끝까지 버티는 자가 승리자다.”

아세아기계상사 박찬익(67) 대표가 농기계를 수리하고 판매하며 40년 외길인생을 살아오면서 몸소 깨달은 삶의 교훈이다.

박 대표는 함양군 학생실기대회에 배제초등학교(지곡면 소재) 학생 대표로 출전해 우수상을 차지할 정도로 공부도 곧잘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12살이나 차이가 났던 형님이 군대에 입대하면서 생계는 더욱 궁핍해졌다. 방과 후에는 공부보다는 그동안 형님이 도맡았던 집안일을 대신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중학교는 졸업했지만 고등학교나 대학 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다.

ⓒ 주간함양
지독한 가난이 싫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그는 진주의 한 양복점에 견습공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양복 짓는 기술자가 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군대 가기 전까지 5년을 꼬박 일했다. 20세가 되던 해 입영을 위한 신체검사 통지서가 나왔다. 군복무를 마치고 빨리 사회에 복귀하겠다는 생각에 ‘우선 징집’을 신청했다. 3년 4개월간의 의무복무를 무사히 마쳤다. 하지만 세상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1970년대 초중반 기성복이 나오기 시작했다. 양복점들은 쇠퇴기를 맞았다. 양복 짓는 기술로 가난을 극복하려했던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1975년 12월 고향으로 돌아와 형님이 막 시작한 농기계수리센터에서 일을 도왔다. 혼자서 부품을 뜯고 조립하기를 반복하며 기계작동의 원리를 터득했다. 망가진 부품과 씨름하며 밤을 새운 적도 부지기수다.

1978년 결혼을 앞두고 형님으로부터 독립해 지금의 아세아기계상사 인근에 자신의 농기계수리센터를 열었다. 종업원을 둘만한 형편이 못돼 아내가 그의 일을 도왔다. “경운기 엔진 같이 100㎏이 넘는 쇳덩이를 아내와 둘이서 들고 옮기는 등 막노동보다 힘든 일의 연속이었다. 임신한 아내를 고생시킨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린다”는 그는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뎌주고 자신을 믿어준 아내가 자신에게 유일한 버팀목이었다”고 고백한다.

ⓒ 주간함양
농기계수리센터로 시작했던 그는 1980년 농기계대리점을 개업했다. 아세아농기계 함양군 1호 대리점이다. “D사, K사 등 5대 농기계 메이커 중 3대 메이커는 함양에 대리점이 있었지만 아세아농기계 대리점은 없었다”며 “당시 아세아농기계는 후발 주자로 인지도나 사세가 약했기 때문에 특별한 담보 없이도 대리점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대리점을 차렸지만 불과 100m를 사이에 두고 쟁쟁한 메이커들과 경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언제 대리점을 접어야할지 고민의 연속이었다. 하루하루 버티기가 힘들 정도였다.

“과욕을 부리지 말자. 아직은 젊다. 5년만 버텨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는 그는 팔리지도 않는 제품판매에 매달리기보다 수리에 초점을 맞춰 대리점을 운영해갔다. 농기계 사용이 많은 농번기에는 새벽 4시부터 밤늦게까지 수리 신청이 쇄도했다. 1년 365일 중 추석, 설 명절 이틀을 빼고는 하루도 문을 닫아 본적이 없다.

ⓒ 주간함양
83년 2월 현재 위치인 함양농협 본점 옆으로 대리점을 옮겼다. 때마침 아세아에서 개발한 분무기가 성능이 좋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80년대 후반에는 아세아 관리기가 대박을 쳤다. 그의 대리점도 자리를 잡았다. “쉽게 포기했다면 오늘이 있었겠냐”며 힘든 시기를 굳건하게 이겨낸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도 단단하다. 그는 1990년대 말 아세아농기계 대리점을 정리하고 ‘아세아기계상사’라는 상호로 엔진톱과 예초기 등 소형기계를 수리, 판매하며 40여년 외길인생을 이어가고 있다.

“꿈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지난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으니 이제 아내와 함께 욕심 부리지 않고 건강하고 즐겁게 살고 싶다”는 박찬익 대표. “그러나 꼭 하고 싶은 게 한 가지 남아있다”면서 “말을 앞세우는 사람은 실속이 없기에 무엇인지는 미리 밝힐 수는 없다”고 긴 여운을 남긴다.
정세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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